"스스로 괜찮아졌다,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주는 슬픔이나 계절이 주는 슬픔은 어떻게 못하겠어요. 슬픈 생각이 들 겨를이 없게끔 바삐 움직이는 수밖에 없더라고요."
이호정(21)씨는 7년 전이던 2014년 4월 16일, 바다에서 오빠 이호진(당시 17)군을 잃었다. 참사 당시 중학생이던 이씨는 그새 당시 오빠보다 나이가 더 많아져 어엿한 성인이 됐다. 대학을 다니며 아르바이트에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는 등 열심히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마음 속에는 여전히 아물지 못한 상처가 크게 남아 있다. 기자에게 오빠를 설명할 때도 줄곧 밝고 담담한 모습이었지만, 세월호를 '그것'이라고 지칭하는 모습에서 마음 속 응어리가 크단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이씨는 지난달 말, 봉우리를 틔우는 꽃을 보고 눈물이 터졌다. 오빠를 잃은 계절이 다시 왔다는 게 문득 실감이 나서였다. 단순히 4월만 슬픈 건 아니다. 그는 "명절, 오빠 생일, 오빠를 보내줬던 날이 돌아오면 많이 슬프다"며 "밥상에 오빠가 좋아하는 음식이 올라왔을 때, 오빠의 친구들을 만날 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슬프다"고 했다.
주위를 둘러봐도 모두 힘들어하는 탓에 가족이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지도 못한다. 자칫 말을 꺼냈다간 애써 참고 있던 이들까지 모두 슬픔에 잠길까 봐서다. 혹여나 상처를 들추는 게 아닐까 하는 맘에 슬픔을 내색하지 않는 게 가족과 이웃 간 일종의 룰이 된 지 오래다. 어느덧 오빠의 나이가 된 막냇동생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도 얼마 전에야 알았다. 이씨는 "밥을 먹다가 오빠 이야기가 나오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가만히 듣거나, 방에 들어가기도 한다"며 "나도 힘들지만 오빠를 낳아 기른 부모님의 슬픔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7년 전 슬픔에 잠겨 있는 건 비단 이씨만이 아니다. 생존자 김동수(56)씨는 7주기를 앞두고 12일 정신과 약 16일치(40~50알)를 삼켜 병원에 이송되기도 했다. 그는 침몰 당시 소방호스를 몸에 감고 학생 20여 명을 구조해 '파란 바지의 의인'이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병원 치료를 받고 있는 김씨는 14일 본보에 "'더 많은 학생이 나오게 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 지쳐서 자고 싶다는 생각에 약을 먹었다"면서 "너무 힘들다"고 심경을 밝혔다.
그날의 트라우마는 이처럼 끈질기게 생존자와 유가족을 힘들게 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피해 유가족 등에게 심리지원을 하고 있는 안산온마음센터의 정해선 센터장은 "트라우마는 어느 순간 사라지는 게 아니기에, 이들이 트라우마를 잘 승화시켜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끔 '외상 후 성장'에 집중하려 한다"며 "그러나 현재 이들의 트라우마 수준은 예나 지금이나 거의 비슷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야 온마음센터를 찾는 발길이 늘었지만, 초기에는 생존자와 피해자들이 트라우마 치료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는 게 정 센터장의 설명이다. 센터에 따르면 2014년 심리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한 인원은 253명으로 전체 사례관리자(센터 등록자, 당시 743명)의 35% 정도였지만, 올해는 3월 기준 사례관리자(888명)의 절반을 넘는 505명(57%)이 참여하고 있다.
정 센터장은 "초기에 센터가 정부 관련 조직이라는 생각에 거부감이 심했다"며 "이곳에 오면 세월호가 생각난다, 고인에게 미안하다 등의 이유로 찾지 않는 분들도 계셨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도 적극적으로 심리지원을 원치 않는 분들이 50~60명 있다"면서 "이분들 중에 트라우마가 심해 심리지원이 필요한 분들이 많아 우려가 크고, 센터에서도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물론 트라우마에서 가장 벗어나고 싶은 이는 당사자이기에, 생존자 및 유가족들은 상당히 노력한다. 주로 다른 곳에 주의를 기울이고 집중하는 게 이들이 택하는 방법이다. 일반인 유가족 대표를 맡고 있는 전태호(45)씨는 "무언가 해야 잡생각이 들지 않고 우울감이 덜할 것 같아, 의도적으로 다른 데 신경을 쓰려 했다"며 "여기에 조금이나마 다른 유가족에게 상담 등으로 도움을 줬으면 하는 바람이 더해져 4년간 사이버대학을 다니며 보건행정학을 수료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들의 가슴에 상처를 덧내는 건 '그만 잊어라' '왜 아직도 잊지 못하냐'라는 무심한 말들과 '시체팔이 그만하라'라는 식의 비난 섞인 말들이다. 이씨는 "1주기 때부터 '언제까지 이야기할 거냐'라는 말이 있었고, 시간이 더 흐른 지금은 더 많아졌다"면서 "그럴 때면 '내가 잘못하는 건가' '내가 놓아야 하는데 못 놓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난 오빠를 잊는다는 게 너무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전씨도 "세월호 참사에 피로감을 느낀다는 사람들의 입장도 이해가 되고, 피로감을 느끼는 그들 역시 피해를 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렇지만 세월호 유가족이나 생존자가 느끼는 상실감이나 피로도도 상당하다는 걸 이해해줬으면, 이들을 향해 비난은 말아줬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이들의 트라우마를 중히 여기지 않는 듯한 정부의 태도도 상처를 키우긴 마찬가지였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7월 '4·16 세월호 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안산 트라우마센터' 건립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130억 원의 예산을 편성했으나, 기획재정부에서 기능 및 규모를 축소하면서 예산이 80%가량 삭감된 바 있다. 그러나 국회 논의 끝에 원안대로 사업이 가능해졌고, 2023년 완공 목표로 건립에 들어간 해당 센터는 세월호 참사뿐만 아니라 수도권 지역 트라우마 치유 등도 지원한다.
생존자·유가족들은 따뜻한 말 한마디가 소중하다고 입을 모았다. 정 센터장도 궁극적인 트라우마 치유를 위해 사회가 다시금 생존자·유가족과 연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들을 사회적으로 지지해주고, 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게끔 돕는 것이 가장 좋은 치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참사 당시 일반인들의 경험을 다큐멘터리로 풀어낸 '당신의 사월'의 주현숙 감독은 우리 모두가 기억하고 있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해보자고 제안한다. 주 감독은 "세월호가 정치적으로 받아들여지면서 한국 사회가 세월호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게 됐다고 생각했다"며 "7년 정도 시간이 지난 지금, 차분히 각자의 경험을 떠올려 유가족·생존자들과 함께 슬퍼하고 연대했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