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16개월 된 입양아가 양부모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건' 재판에서 부검 재감정을 수행한 법의학 교수가 사망 당일 양모가 정인이 배를 2차례 이상 밟았을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또한 아이가 사망 전에도 수 차례 타격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거나 의식을 잃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소견을 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3부(부장 이상주) 심리로 14일 오후 열린 양모 장모(34·구속)씨의 살인 및 아동학대치사, 양부 안모(36·불구속)씨의 아동학대 혐의에 대한 결심공판에서는 법의학 전문가 이정빈 가천의대 석좌교수(75)가 증인으로 출석해 부검 감정 결과를 설명했다. 1심 마지막 증인인 이 교수는 검찰이 지난해 12월 정인이 사망 원인을 재감정해달라고 의뢰한 전문가 3명 중 1명으로, 검찰은 지난 7일 공판에서 이 교수의 감정서를 근거로 양모가 아이 복부를 밟아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양모가 정인이를 두고 '잘 울지도 않는 애'라고 평가했는데, 실은 이미 갈비뼈가 여러 차례 부러져 (고통 때문에) 못 우는 애였던 것"이라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갈비뼈가 부러지면 소리도 못 내고, 숨도 잘 못 쉬고, 웃지도 못하는데 이런 아이를 발로 밟았을 때 안 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느냐"며 장씨가 아이의 사망 가능성을 알고도 학대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부검 결과 정인이 복강 내 출혈량은 600㎖였다. 정인이와 같은 체중 9.5㎏ 아동의 평균 혈액량(760㎖)의 80%에 육박하는 양이다. 이 교수는 정인이가 숨진 날인 지난해 10월 13일 오전 9시 1분 촬영된 동영상을 보면서 "사망 당일 오전 9시쯤엔 멀쩡했던 아이가 오전 10시 34분쯤에는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의식이 가물가물한 상태였다"며 "장간막은 혈관이 발달해, 정맥이 터졌다고 해도 짧은 시간에도 출혈량이 크다"고 말했다. 1시간 반 사이에 복부 손상이라는 결정적 사건이 있었다는 얘기다.
장씨가 '아이 겨드랑이를 들어올려 흔들다 떨어트리면서 범보의자에 부딪혔다'고 진술한 것에 대해 이 교수는 "그 정도로 장간막이나 췌장이 터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바닥에 누워 척추뼈가 고정돼 받쳐주는 상태에서 손이나 발로 미는 힘이 강하게 가해졌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
가격 수단을 두고는 "장씨가 가슴 수술을 받고 '힘이 너무 든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 만큼 손으로 장간막이 파열될 정도로 내리칠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발로 밟았다고 보는 게 합당하다"고 밝혔다. 또한 "부검 결과 정인이가 이미 복막염을 앓은 사실이 밝혀졌는데, 이는 이전에도 복부를 밟혀 췌장액이 새어나오면서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정인이 머리뼈가 7㎝가량 골절된 이유에 대해선 "두개골 내부는 출혈과 같은 손상이 없는데 뼈만 깨졌다"며 "머리를 바닥에 대고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 위에서 때렸을 때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골절이 사망 2, 3개월 전에 발생한 걸로 보이는데 당시에도 아마 의식이 없었을 텐데도 병원에 가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팔뼈 골절 경위를 두고는 "피부가 깨끗한 점에 비춰볼 때 맞은 게 아니라 팔을 비튼 것으로 보이는데 이 정도면 '으드득' 소리가 났을 것이고 아이가 팔을 못 썼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어깨뼈 골절과 겨드랑이 상흔에 대해선 "팔을 든 채로 막대기 같은 것으로 때릴 때 가능한데 전기로 지지는 것보다 더 아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씨 변호인이 "피고인이 아이에게 심폐소생술(CPR)을 시행하다가 정확한 지식이 없어 가슴이 아닌 배에 힘을 가했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이 교수는 가능성이 낮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교수는 "아이 간은 어른보다 차지하는 면적이 넓어 CPR로 골절이나 출혈이 발생했다면 간에 손상이 일어났을 것인데 (부검 결과에는)그런 흔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