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에즈운하가 가로막힌 시간은 고작 일주일뿐이지만, 후폭풍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번엔 통행 중단으로 대기 선박들이 내뿜은 오염 물질이 급증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책임 소재를 둘러싼 배상 분쟁도 본격화했다.
영국 BBC방송은 13일(현지시간) 지난달 23일부터 일주일간 이어진 수에즈운하 통행 중단으로 지중해 측 운하 입구 지역의 이산화황(SO2) 농도가 평소보다 5배나 높아졌다고 보도했다. 당시 에버기븐호 좌초하면서 350척 넘는 선박이 항로 대기에 들어갔는데, 주 엔진은 꺼놨지만 보조동력장치 등을 계속 가동한 탓에 대기오염 물질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실제 에버기븐호가 수에즈운하를 막은 지난달 23~29일 유럽우주국(ESA) 센티넬-5P 위성이 촬영한 영상을 보면, 지중해 방면 운하 입구 해상의 이산화황 농도는 이집트 수도 카이로 상공 수치와 맞먹는다. 방산업체 에어버스 디펜스앤드스페이스(D&S)의 지구관측 전문가 마르얌 푸샴시 박사는 “통상 선박은 정박해 있을 때보다 항해할 때 더 많은 이산화황을 방출하지만, (이번 결과는) 너무 많은 배가 한 곳에 몰려 있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방송은 수에즈운하 사고로 국제해사기구(IMO)의 오염물질 방출 제한 노력도 위기를 맞았다고 진단했다. IMO는 지난해 황산화물(SOx) 배출 70% 이상 감축을 목표로 하는 새 규정을 도입했다. 해운업계 역시 2050년까지 2008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50% 감축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해운사들이 뭔가를 해보기도 전에 의욕을 꺾는 사태가 터진 것이다.
최대 관건인 배상 논의도 예상대로 시작부터 삐걱대고 있다. 이집트 법원은 이날 에버기븐호의 소유주인 일본 쇼에이기선에 구조작업과 운하가동 중단에 따른 피해액 9억1,600만달러(1조270억원)을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무라코시 류(村越龍) 쇼에이기선 대변인은 일단 “이집트 법원이 에버기븐호를 압류했고, 당국과 계속 배상 논의를 하고 있다”고 원론적 입장을 밝혔으나 양측의 입장 차가 워낙 커 협상은 난항에 빠졌다.
오사마 라비 수에즈운하청(SCA) 청장은 이날 국영TV에 출연해 “(선주가) 아무 것도 지불하지 않고 싶어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에버기븐호의 보험사인 UK클럽은 이집트 당국의 보상액 책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UK클럽은 성명을 통해 “SCA의 배상 청구액 대부분이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심사숙고한 끝에 전날 관대한 제안을 했다”고 밝혔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보험사는 이집트 당국이 책정한 인양 비용 3억달러와 ‘평판 손실’ 3억달러에 대한 근거를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