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구조사 결과, 20대 남성, 이른바 '이남자'의 72.5%가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보수적이라는 60대 이상 남성들보다도 높은 수치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더불어민주당은 ‘멘붕’에 빠졌고, 이 현상을 놓고 다양한 해석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20대 남자는 문재인정부 임기 초만 해도 가장 큰 지지세력 중 하나였다. 그런 이들이 왜 이렇게 등을 돌리게 되었을까.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분노하게 한 것일까.
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6월, 한국갤럽 정기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직무수행을 잘하고 있다고 답변한 20대는 90%에 달했다. 남성 87%, 여성 94%였다. 그랬던 이들이 이탈하기 시작한 건 2018년 초, '공정'이 화두로 떠오르면서다. 평창동계올림픽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을 놓고 논란이 계속되면서 지지율이 급락했다. 청년들에게 이 문제는 단순히 한반도평화를 위해 우리 선수들의 기회를 다소 제한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 반발 속에는 정치 논리에 따라 불공정한 희생을 강요하는 정치권에 대한 분노가 자리 잡고 있었다.
오늘날 20대가 공정에 민감한 건 그들이 유달리 속이 좁거나 이기적이라서가 아니다. 경쟁의 강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전에도 경쟁은 있었지만, 지금은 그 경쟁의 보상 격차가 하늘과 땅만큼 벌어졌다. 인천국제공항공사로 대표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두고 공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건 그런 이유에서다.
과거에는 대학에 안 가도 괜찮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고, 일자리 간 격차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대기업(또는 공기업)이냐 중소기업이냐,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에 따라 삶의 수준이 극복할 수 없을 만큼 갈린다.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1997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월급 격차는 39만 원에 불과했지만 2016년에는 190만 원까지 확대된다. 비정규직 역시 양과 질에서 꾸준히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시험문제 하나로 대학의 당락이 갈리고, 그 대학이 일자리의 수준을, 일자리의 수준이 삶의 계층을 결정짓는 현실에서 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공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거세진다. 그런데 정부 여당이 내세운 가치들은 늘 공정과 대립했다. 남북단일팀 사건은 물론 대입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비율 문제, 그리고 조국 전 장관 임명 당시 ‘부모찬스’ 논란이 그랬다. 남북 화해, 공교육 정상화, 검찰개혁과 같은 대의명분이 당장 눈앞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20대들에게 와 닿을 리 없었다.
공정성을 두고 벌어지는 갈등은 젠더 이슈와 결합하면서 확장, 증폭되었다. 젠더 갈등이야말로 20대 남성의 지지층 이탈을 가속화한 결정적인 원인이다.
20대 남성들의 불만은 단지 현 정부 들어 대폭 확대된 여성경찰 채용이나 성인지 예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이른바 ‘곰탕집 성추행 사건’으로 대표되는 ‘성인지감수성 판결’처럼 공정한 심판이 되어야 할 정부가 일방적으로 여성의 편에 선다고 여기고 있다. 실제로 문 대통령에 대한 20대 남성의 여론은 젠더 이슈에 정부 여당이 편향적으로 개입한다고 느껴졌을 때 출렁이는 경향을 보였다. 여성가족부 장관이 ‘혜화역 시위’에 참석한 소감을 SNS에 남겼을 때나, 여권 정치인들이 ‘이수역 사건’ 발생 초기에 사실관계도 제대로 따져보지 않은 채 이를 여성혐오 범죄로 규정했을 때가 그랬다.
불에 기름을 끼얹은 건 정부 여당의 자세였다. 20대 남성들의 불만이 터져 나올 때마다, 경청하기 보다는 무시하거나 나무라는 식으로 대응했던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남성들의 여성징병제 청원을 “재밌는 이슈”(2017년 9월)로 일축한 것이나, “젠더 갈등이 특별한 것 아니라고 생각한다"(2019년 신년 기자회견)며 대수롭지 않게 치부했던 게 대표적이다. 20대 남성 지지율이 안 나오는 이유를 두고 “이명박, 박근혜 때 교육을 잘못 받아서(설훈 의원)”, “반공교육으로 보수화되어서(홍익표 의원)”라고 답한 여당 정치인들의 발언들도 반감을 키웠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박영선 후보는 청년들이 “역사 경험치가 낮다”고 주장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이건 어떻게 보면 반은 맞는 말이다. 정치는 연속적이지만 세대에 따라 단절적이기도 하다. 586세대의 민주화운동은 그들 자신들의 역사일 뿐, 1993~2002년에 태어난 지금의 20대들에겐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이룩한 영광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억도 없다. 현 여권이 성취했던 도덕적 상징은 적어도 20대엔 '유통기한'이 지난 셈이다.
20대들로선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룩한 586의 업적을 감안해 줄 이유가 없다. 그래서 철저히 현재 모습들로 정치권을 판단한다. 걸핏하면 '내로남불' 논란이 불거지는 건 이 때문이다. 정부 여당은 늘 검찰·보수언론·재벌 대기업을 기득권으로 매도하지만, 청년들 눈에는 그들 역시 명문대학 나와 강남에 살면서 법이 바뀌기 전에 월세를 대폭 올리는 기득권일 뿐이다. 노 전 대통령과 검찰 사이의 갈등을 직접 목격한 적 없는 이들에게는 검찰개혁의 필요성보다, 조국 전 장관의 각종 의혹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옛날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모습을 놓고 봤을 때 과연 그가 개혁에 적합한 인물이냐는 것이다.
선거 이후 20대 남성들이 왜 야당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물음이 쏟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묻자. 20대 남성들이 현 정부 여당을 지지해야 할 이유는 있었나.
민주세력, 개혁세력이기에 뽑아야 한다는 구호는 더는 호소력을 갖지 못한다. 진영에 따른 ‘묻지마 투표’를 하지 말자는 것, 이것은 현 여권이 과거 지역주의를 비판할 때 주장한 메시지다. 정치란 결국,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고 거기에 더해 좋은 공동체를 만들 사람을 선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4년 전 대선 당시 유승민·심상정 후보의 득표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건 20대였다. 이후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20대 남성의 부동층 비중은 다른 연령대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비록 이번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20대 남성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황교안·나경원 시절 보수 유튜버와 태극기부대에 휘둘렸던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간다면 다시 외면받을 것이다.
지금의 20대에게는 산업화·민주화보다 IMF나 2000년대 신자유주의 물결이 더 가까운 역사다. 경쟁은 살아남기 위한 수단일 뿐, 사실 이들은 불평등을 체화한 세대로 보는 게 맞다. 태어난 집안, 지역에 따른 삶과 꿈의 격차가 어마어마하게 크다. 이 세대가 하나의 의제로 뭉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공통된 부분은 하나 있다. 남북단일팀 구성 문제부터 최근의 부동산 폭등과 LH 사태까지, 청년들의 요구는 다른 듯해도 일관되었다. 우리 일상에 놓인 문제를 잘 해결할 능력과 비전을 갖춘 세력에 표를 주겠다는 것이다.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대학에서 언론학을 전공하고 정치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 뒤 2016년 청년정책 싱크탱크 '청년정치크루'를 결성했다. 진보·보수에 구애받지 않고 취업준비생보호법, 채용 사기 등 청년들의 당면문제 해결을 위해 뛰어왔으며, '진보도 싫고, 보수도 싫은데요' '어른이 정치사'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