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한국어 달인' 소녀의 비결

입력
2021.04.1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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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16)는 인도네시아 고3 학생이다. 학교에서든, 학원에서든 한국어를 단 한 번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한국인을 직접 만난 적도 없다. 한국 드라마를 보고 또 보고, 한국 가요를 듣고 또 들었을 뿐이다. 신조어도 척척, 한국어 실력이 한국 사람 못지않다. '그 무엇도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공자님 말씀이 떠오른다.

한국 같으면 학교 공부가 서서히 부담이 될 중1 때부터 클라라는 한국 드라마를 봤다. 용돈을 아껴서 한국 드라마가 담긴 해적판 CD를 샀다. 드라마 3, 4회 분량이 담긴 CD는 장당 우리 돈 약 550원, 노점에서 한끼 해결할 수 있는 금액이다. 일주일에 3개 드라마 전편을 봤다. 한국어가 너무 좋아서, 빨리 알아듣고 싶어서 자막도 보지 않았다. 밤을 새우는 날이 허다했다.

3년이 지나자 귀가 열렸다. 자연스럽게 한글도 뗐다. 뜻을 모르는 단어는 인터넷을 찾아 익혔다. 그렇게 6년간 본 한국 드라마가 200편(CD 800여 장 분량)이 넘는다. 작년엔 대학 주최 한국어 말하기 대회 1등을, 최근엔 인도네시아 주재 한국문화원이 처음 마련한 '한국문학 번역자 발굴 공모전'에 최연소 수상을 했다. 또래 한국 학생도 버거울 근대소설 '봄봄(김유정)'을 인도네시아어로 옮겼다.

클라라가 생각하는 한국(인)은 정이 많고 이웃을 살피고 애국심이 강한 나라(사람)다. 꼰대 문화, 고부 및 장서 갈등 같은 사회상도 끄집어낸다. 주로 드라마로 접한 한국의 모습일 게다. 일부 과장되거나 왜곡된 인식이 걱정되긴 하지만 그것이 오롯이 클라라의 잘못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한류를 사랑하는 현지인 대부분이 드라마 등 대중매체를 통해 한국을 들여다보는 게 현실이니까. 오히려 한류 관련 제작자들이 새기고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인도네시아의 한국 사랑은 짝사랑에 가깝다. 돈 때문이 아니라 그저 한국이 좋고 알고 싶어서 한국어를 독학하는 청춘이 많다. 반면 우리는 인도네시아를 너무 모른다.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 하대하고 무시하는 경향도 있다. 그 간극을 시나브로 좁혀야 한다.

자카르타= 고찬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