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재·보궐선거 참패 후 '참회 모드'로 전환했던 더불어민주당의 쇄신 작업이 뒷걸음질 치고 있다. 선거 패배의 원인이 '당심'과 '민심'의 괴리에 있다는 당 안팎의 반성에 친문재인계(친문계)가 태클을 걸면서다. 통렬한 반성문을 썼던 초선 의원들도, 위기 탈출을 위해 출범한 비상대책위원회도 친문계의 '입김'에 한 걸음씩 물러섰다.
"반성문은 지난 이틀 동안 (언론에 의해) 본질과 세부 내용이 생략된 채 자극적인 제목으로 곡해돼 다뤄졌다."
선거 참패에 대한 반성문을 쓴 민주당 2030세대 초선 의원(오영환 이소영 장경태 장철민 전용기) 5명은 이틀 만인 11일 이 같은 입장을 냈다. "참패의 원인을 야당 탓, 언론 탓, 국민 탓, 청년 탓으로 돌리는 목소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반성문이 오독됐다면 다시 설명하면 될 일인데, 외부에 책임을 돌린 것이다.
이들이 퇴각한 배경엔 강성 친문 지지층의 난타가 있다. 반성문 중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검찰개혁의 대명사라고 생각하고 무리하게 지킨 것이 민심 이반의 한 이유'라는 내용이 타깃이 됐다. 초선 5명은 '조국의 배신자', 조선족에 빗댄 '초선족' 혹은 '초선 5적'이라 불리며 주말 내내 조리돌림당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이들의 휴대폰 번호가 공유됐고, 문자·전화 항의가 빗발쳤다.
이 같은 린치를 자제시키는 당내 목소리는 거의 없었다. "비난과 질책이 아닌 격려와 응원을 부탁한다"고 박용진 의원이 11일 페이스북에 글을 쓴 게 전부였다.
친문계는 선거 참패 책임을 지고 일괄 사퇴한 지도부를 새로 구성할 방식을 놓고도 화력을 뿜었다. 비대위는 8일 '당 최고위원을 전당대회가 아닌 국회의원·지역위원장 등이 참여하는 중앙위원회에서 뽑겠다'고 발표했다. 전당대회에 드는 시간·비용을 아끼고 새 지도부를 빨리 꾸리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비대위는 11일 '전당대회를 통해 최고위원을 선출한다'고 번복했다. 역시 친문계의 압박 때문이었다. 친문계 당권 주자인 홍영표 의원, 강경파인 황운하, 김용민 의원 등이 총대를 멨다.
민주당 전당대회는 권리당원이 40%의 의결권을 행사하며, 권리당원의 다수는 친문계다. 홍 의원 등은 '민주적 당내 의사 결정'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차기 대선을 지휘할 당 지도부에 비(非)친문계가 포진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것이 본심에 가깝다.
조직 차원의 오류·실패의 책임은 조직의 주류가 지는 것이 기본이다. 민주당의 확고부동한 주류는 친문계다. 선거 패배 원인 진단부터 차기 지도부 구성까지 쥐락펴락하는 것은 친문계가 책임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로 비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쇄신 방향과 방법을 놓고 친문계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모양새가 되면서 '친문이 허용하지 않는 쇄신은 어려워졌다'는 자조가 당 안팎에서 나온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평상시도 아니고 선거 참패라는 비상 상황인데도 쇄신론 언급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또다시 친문계 일색의 지도부가 구성된다면 그때는 민주당이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