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끄려다 끌려간 뒤 주검으로'… 기습 납치에 떠는 미얀마

입력
2021.04.09 18:00
야밤 집까지 들이닥쳐 무작위 납치 다반사 
기습 수색 맞서 마을 지키려다 물리적 충돌 
아세안 회의 예정, 美 제재에도 상황은 악화

미얀마 남부 샨주(州)의 한 관공서 건물에 4일 밤 폭발음과 함께 불이 났다. 불을 끄던 주민 틈에 있던 코(30)씨 등 최소 4명이 군경에 납치됐다. 코씨는 이틀 뒤 시신으로 돌아왔다. 군은 소방차에 부딪힌 교통사고로 인한 뇌출혈 등이 사인이라고 밝혔지만 주검은 다르게 말했다. 그의 얼굴은 타박상으로 덮여 있었고 귀 하나는 거의 잘린 상태였다. 등에는 자상이 선명했다. 고문에 의한 살인이라고 시민들은 주장했다.

세 아이를 홀로 키우는 한 여성(50)은 지난달 중순 자신의 집으로 들이닥친 군경에게 목숨을 잃었다. 학생 시위대를 집에 숨겨줬다는 이유였다. 2일에는 미국 CNN방송 취재팀과 인터뷰한 양곤 시민 중 적어도 6명이 납치됐다. 이 중엔 시장에 물건을 사러 나온 여성도 있었다. 검문 중에 납치된 인원도 많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다. 모델, 배우 등 유명인들도 납치되고 있다. 9일 현지 매체 이라와디 등이 전한 참상이다.

미얀마는 이미 집마저 안전한 장소가 아니다. 야밤에 자택을 기습한 군경에게 끌려간 시민들이 잇따르면서 밤마다 공포에 떨고 있다. 거의 유일한 정보 공급 통로인 위성TV를 보지 못하게 하려고 군인들이 접시 안테나마저 뜯어 가고 있다. 특히 주요 도시 외곽과 지방 도시에선 시위대 색출을 빌미로 주택가 수색과 기습 납치가 일상처럼 벌어지고 있다. 2,800명 이상이 구금돼 있다는 정도만 알려졌을 뿐 이들의 정확한 행방은 묘연하다. 주검으로 돌아올 뿐이다.

기습 납치를 막기 위한 시민들의 저항이 이어지면서 군경과 시위대 간 물리적 충돌이 교전 양상으로 악화하고 있다. 7일 오후 사가잉주에선 트럭 6, 7대에 나눠 탄 군인 100여 명이 마을에 들이닥치자 주민들이 사제 공기총과 새총, 화염병 등으로 맞섰다. 군은 수류탄 등 폭발물과 기관총 등 자동화기로 주민들을 제압했다. 교전은 다음날 오전까지 지속됐다. 최소 주민 12명이 폭발물에 목숨을 잃었고, 승려 등 12명 이상이 다쳤다. 저항하지 않은 시민 3명도 총탄에 맞아 숨졌다. 납치되지 않으려는 시민들의 몸부림을 유혈 진압한 것이다. 군인 사상자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국경 지역 주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나라를 떠나고 있다. 2월 1일 쿠데타 발발 이후 약 1,800명이 인도로 몸을 피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민주진영 국회의원 6명도 포함됐다. 미얀마 군부는 "유혈 사태의 책임은 시위대에 있다"고 CNN에 밝혔다. 무고한 아이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증거를 가져오라"고 반박했다.

미국 재무부는 8일(현지시간) 미얀마 군부의 돈줄인 광업부 산하 국영보석회사를 특별지정 제재대상에 올렸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정상회의가 이달 말 열린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럼에도 미얀마 상황은 악화일로다.

자카르타= 고찬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