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서울시장 보궐선거 개표 결과 국민의힘 소속 오세훈 당선자는 25개 자치구(區) 중 대부분 지역에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압도했다. 박 후보가 국회의원 시절 내리 3선을 했던 구로구는 물론 지난해 21대 총선에서 오 당선자에게 패배를 안겼던 광진구도 오 당선자의 손을 들어줬다.
이 같은 압도적 승리는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등에 성난 보수층의 결집 외에도 전통적 여권 지지층이던 20·30대마저 등을 돌린 결과다. '젠더 선거'로 치러진 이번 선거에서 다수의 20대 여성 유권자들이 젠더 이슈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제3 후보에게 표를 던진 것도 눈에 띄었다.
개표가 60% 가까이 진행된 8일 0시30분 현재 중앙선관위 개표 상황에 따르면, 오 당선자는 강북구를 제외한 24개 구에서 우세를 보였다. 박 후보의 국회의원 시절 지역구였던 구로구에서도 오 당선자의 득표율은 52.8%로 박 후보(44.2%)보다 약 8%포인트 이상 높았다. 지난해 총선에서 청와대 대변인 출신 '정치 신인'인 고민정 민주당 후보의 손을 들어준 광진구에서도 오 당선자는 55.0%를 얻어 박 후보(41.7%)를 여유롭게 따돌렸다.
이날 투표율 1~3위를 싹쓸이한 강남 3구(서초·강남·송파)에선 오 당선자에게 몰표가 쏟아졌다. 전통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이지만,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관련 세제 정책이 '강남 때리기' 효과로 나타나면서 '보수 지지'로 똘똘 뭉친 것으로 분석된다. 서초구와 강남구에서 오 당선자는 70%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박 후보의 득표율을 두 배 이상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박 후보의 치열한 추격전에도 오 당선자가 여유롭게 승리한 배경에는 그간 여권 지지 성향이 강했던 20·30대의 ‘변심’이 있었다. 이날 오후 8시 투표 종료 후 발표된 방송 3사(KBS·MBC·SBS) 출구조사에서는 오 당선자의 예상 득표율은 20대 이하와 30대에서 각각 55.3%, 56.5%를 기록해 34.1%, 38.7%의 박 후보를 크게 앞섰다.
이들 세대는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에 분노해 가장 적극적으로 촛불을 들었다. 지난해 21대 총선까지도 여당을 지지했던 이들이 불과 1년 만에 정반대의 선택을 한 것은, 전·월세를 둘러싼 여권 인사들의 '내로남불' 논란이 불거지는 등 문재인 정부가 ‘공정’에 민감한 이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20대 남성에선 오 후보의 예상 득표율은 72.5%를 기록했는데, 통상적으로 보수 성향이 가장 강한 60대 이상 남성(70.2%)보다 높았다.
이번 선거의 최대 이슈인 ‘부동산’ 문제에 민감한 50대에서도 오 당선자는 55.8%로, 박 후보(42.4%)를 앞섰다. 현 정권의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불리는 40대에서만 두 후보는 오차범위 이내 경합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후보의 예상 득표율은 49.3%, 오 당선자는 48.3%였다. 박 후보는 40대 남성에서만 51.3%로 과반을 기록했다.
‘첫 여성 서울시장’을 꿈꿨던 박 후보는 여성들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했다.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여성 유권자의 39.1%가 박 후보를, 57.2%가 오 당선자를 택했다. 남성 유권자 사이에선 박 후보가 36.3%, 오 당선자가 60.9%로 여성 표심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20대 여성에선 박 후보 44.0%, 오 당선자 40.9%인 반면, 제 3 후보를 지지한 이들도 15.1%에 달했다. 이번 보궐선거가 박원순 전 시장의 성 비위로 치러진 선거인만큼 민주당이나 젠더 이슈에 소극적이었던 보수 야당을 지지할 수도 없다고 판단한 이들이 제3 후보를 대안으로 선택한 결과로 풀이된다.
선거운동 마지막 날까지 박 후보와 민주당은 "화가 풀릴 때까지 혁신하겠다", “두 배 더 잘 하겠다"며 읍소했다. 그러나 부동산 민심이 촉발시킨 정권심판론의 파도를 넘어서기엔 역부족이었다. 더욱이 전통적 여당 지지층인 젊은층과 전통적 강세 지역에서도 민심 이반이 확인된 것은 민주당으로선 치명적이다. 선거 후 민심 수습에 나서지 못한다면 내년 대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