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일로를 걸어 온 북한과 일본의 관계가 끝내 파국을 맞는 분위기다. 일본이 북한의 핵ㆍ미사일 개발 등을 이유로 15년간 부과해 온 ‘독자 대북 제재’를 연장하기로 결정하자마자, 북한도 기다렸다는 듯 개막을 석 달 앞둔 도쿄올림픽ㆍ패럴림픽 불참을 선언하며 ‘맞불’을 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대회가 1년 연기된 데다 해외 관중 수용도 어려워지며 가뜩이나 위태위태한 도쿄올림픽에 닥친 또 다른 대형 악재다. 올림픽을 계기로 북일관계 돌파구를 마련하려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의 대북 구상도 완전히 틀어졌다. 일본의 취약점을 골라 타격을 극대화하는 북한의 ‘노림수’가 먹혀들었다는 해석이 많다.
북한이 겉으로 내세운 불참 사유는 ‘선수 보호’다. 북한 체육성은 6일 ‘조선체육’ 홈페이지를 통해 “악성 바이러스 감염증에 의한 세계적인 보건 위기 상황으로부터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지난달 25일 올림픽위원회 총회에서 도쿄올림픽 불참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북한이 하계올림픽을 건너뛰는 건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33년 만이다. 북한은 코로나19 확진 및 사망자가 전혀 없는 ‘코로나 청정국’을 자처하고 있다.
하지만 총회가 열리고 12일이 지나서야 불참 결정을 공개한 것이 아무래도 석연치 않다. 북한이 발표 시점을 일부러 골랐을 것이란 얘기다. 이날 일본은 북한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발사, 일본인 납치 사건 등을 문제 삼아 2006년부터 시행해 온 대북 제재를 2년 연장했다. 대북 수출입 금지, 북한 선적 및 기항 경력 선박 입항 불허 등이 유지된다. 어차피 있던 제재라 북한이 잃을 건 별로 없는 반면 일본은 도쿄올림픽 개최에 치명타를 입어 북한이 올림픽 불참을 반격 카드로 삼았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일본 관방장관은 “북한과 직접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는 일본 정부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애써 태연한 척을 했다. 하지만 스가 총리가 “조건 없이”라는 단서까지 달아가며 수차례 추진 의지를 밝힌 ‘북일 정상회담’성사 가능성은 더 희박해졌다. 언론 반응도 비관 일색이다. 교도통신은 외교 전문가들을 인용해 “북한의 올림픽 불참 선언은 일본이 북한과의 대화 물꼬를 틀 기회를 앗아갔다”고 분석했다.
대회 조직위 역시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각국 올림픽위원회와 조율을 담당하는 조직위 관계자는 “사전에 아무 얘기도 듣지 못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며 황당해했고, 마루카와 다마요(丸川珠代) 올림픽장관은 “세부 내용을 확인 중”이라며 말을 아꼈다. 일본 정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북한이 지난해 초부터 중국ㆍ러시아와 국경을 봉쇄하고 있는 점을 들어 “다른 나라에서 열리는 지역 예선에 나가지 않으면 올림픽 출전권을 얻을 수도 없다”며 “북한의 불참 결정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북한의 불참 선언이 코로나19 우려로 올림픽 참가를 주저하는 다른 국가들에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AP통신은 “북한은 코로나19로 올림픽에 불참하는 첫 번째 국가가 됐다”며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속에 국제 스포츠 행사를 개최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일본이 직면한 어려움을 보여준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