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보궐 선거를 앞두고 여성과 성소수자 지원을 전면에 내세운 후보들의 선거 벽보·현수막이 훼손되는 사건이 연일 발생하고 있다. 후보들은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훼손 사례를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로 규정하고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6일까지 선거 홍보물 훼손이 발생한 후보는 신지혜 기본소득당, 오태양 미래당, 신지예 무소속 후보 등 세 명이다. 앞서 오태양 후보의 성 소수자 공약이 쓰인 현수막과 신지혜 후보의 페미니즘 공약 현수막이 훼손된 데 이어 전날 신지예 후보의 벽보가 찢기는 일이 발생했다.
공교롭게도 이들 모두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대변자를 자임하는 후보들이다.
신지예 후보는 이날 페이스북에 "선거 벽보 훼손 사건이 또 일어났다"면서 "벽보는 후보가 자신의 얼굴을 내걸고 유권자와 만나는 장소이자 공공에게 보내는 메시지인데, 계속해서 만만하고 '시건방진' 젊은 여성 후보자들을 향한 선거 벽보 훼손이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시건방지다고, 신지예가 시장이 되면 남성 취업이 어려워진다며 벽보가 훼손됐던 2018년 서울시장 선거, 기분 나빠서 벽보가 훼손됐던 2020년 총선이 떠오른다"며 "당시의 마음을 다시 굳게 다진다. 백래시(backlash)에 굴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백래시는 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한 반발 심리 및 행동을 뜻한다.
신 후보의 선거홍보물 훼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슬로건으로 내세워 출마했을 당시 후보를 겨냥한 현수막 훼손이 발생했다. 지난해 21대 총선에 출마했을 당시에도 벽보가 훼손되는 일을 겪었다.
같은 날 신지혜 후보 역시 서울 강동구에서 벽보가 훼손된 것을 발견하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페미니즘 공약 현수막을 향한 여성 혐오적인 반응을 확인했다"면서 "의도적인 혐오범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앞으로도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에 맞서 싸우겠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25일과 31일에도 각각 마포구와 강동구에서 신 후보의 선거 현수막이 훼손된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선 바 있다. 현수막에는 '페미니스트 시장 신지혜, 무상생리대·미프진 책임지겠다'는 공약이 적혀 있었다.
선거홍보물 훼손은 여성 후보자들에게만 국한된 일은 아니다.
성소수자를 대변해 출마한 오태양 후보도 지난달 29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시 7개 구에서 선거 현수막 20개가 훼손됐다고 전했다. 현수막에는 '성 소수자 자유도시 선포', '동성결혼, 차별금지, 퀴어축제 전면 지원' 등 공약이 적혀 있었다.
5일 경찰에 따르면 범인들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이들은 현수막 속 오 후보의 목과 얼굴 등을 칼로 훼손하고, 현수막을 라이터 불로 지지거나 태운 혐의를 받고 있다. 모두 같은 종교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오 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특정 종교인들에 의해 성 소수자 현수막이 훼손되는 것은 매우 안타깝고 충격적인 일"이라며 "선거 방해를 넘어 성소수자 괴롭힘을 목적으로 한 명백한 혐오 범죄로 사법처리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거 홍보물을 훼손한 사람은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 우리 법은 홍보물 훼손에 대해 최대 징역형을 내릴 만큼 강하게 처벌한다. 국민의 대표를 뽑기 위해 필요한 정보가 담긴 인쇄물을 보호한다는 이유에서다.
공직선거법 240조에 따라 벽보, 현수막 등을 정당한 사유 없이 훼손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 원 이하 벌금이 처해진다. 대부분 벌금형이 선고되지만 훼손의 정도가 크거나 횟수가 많으면 형벌도 무거워진다. 훼손은 아니더라도 사실상 훼손과 다름없는 행동을 한 경우에도 똑같이 처벌받을 수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선거 홍보물 훼손이 발견되면 경고를 하고, 고의성이 보일시 검찰에 고발한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