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한국사회는 대통령 중심이다. 권위주의 시기라면 체제의 성격상 대통령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자연스럽다. 민주화 이후 33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여전히 그렇다면, 그건 문제다. 대통령이 법을 제정하고 집행하고 적용하는 모든 과정을 지배하는 권위주의와는 달리, 민주주의는 '원리상' 그래서도 안 되고 '현실적으로' 그럴 수도 없다. 그래서도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는데도, 계속 그래왔기 때문에 한국 민주주의의 비극은 대통령의 불행으로 막을 내렸다.
대통령직이 그만큼 대단한 것일까? 국면에 따라 그런 것처럼 보인다. 임기 초는 특히나 그런 착시 현상을 갖게 한다. 허나 대통령이 주도했던 변화나 개혁의 성과를 놓고 보면, 사실은 정반대에 가깝다. 대통령의 성취는 빈약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과 녹색성장,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와 교과서 국정화가 대표적인 예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적폐청산과 검찰개혁도 별다를 것 같지가 않다. 감옥 가고 탄핵되는 경험을 겪고도 한국의 대통령제를 막강하게 보는 것은 어딘가 이상한 일이다.
대통령 권력은 그 자체로 강할 수가 없다. 입법-행정-사법부 사이에서 상호 견제와 좋은 균형을 도모하며 실체적 변화를 이끌 때만이 대통령의 존재는 빛난다. 여야와 국회가 중심이 되는 정치 과정 속에서 일을 풀어가지 못하면 대통령은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권위주의 대통령은 ‘명령’으로 일하지만 민주주의 대통령은 '정치의 힘'으로 일한다. 비판적 언론 앞에 서야 하고 반대하는 야당도 만나야 한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은 일주일에 평균 한 번 이상 기자들과 만나 질문에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8년 경험이 어땠냐'는 질문에 "야당 의원 만나 점심 먹고 농구공 사인해 선물하며 협조를 부탁하는 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것 같다"며 웃었다.
민주주의는 '지시하는 권력'이 아니라 '관계하는 권력'에 익숙한 대통령을 필요로 한다. 입법-사법-행정 기능 전체를 압도하는 '개혁 군주'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민주적으로 정치하는 대통령을 필요로 한다. 야당-언론과 거리를 두라거나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확대하라고 조언하는 지식인과 참모를 멀리하는 대통령을 필요로 한다. 야당과의 만남이나 기자회견이 대통령의 '연례행사'가 아니라 '일상 업무'임을 이해하는 대통령을 필요로 한다. 민정-인사-정무수석은 물론 교수 출신 정책실장을 두지 않는 대통령을 필요로 한다. 그건 집권당(government party)이 할 역할이라며, 그게 아니면 언제 정당 정부(party government)의 이상을 실천할 수 있겠냐고 따져 묻는 대통령을 필요로 한다. 청와대가 아니라 당정이 '개혁의 센터' 역할을 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대통령을 필요로 한다. 이런 대통령을 보게 될까?
전·현직 대통령 간의 싸움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한국사회는 벌써 차기 대통령을 둘러싼 싸움을 시작했다. 이번 보궐선거는 이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우리 사회의 모든 힘과 열정, 에너지, 시기, 질투, 복수심, 음모, 게다가 진심과 선의, 정의감까지 대통령 전쟁에 동원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통령제와 민주주의가 병행 발전할지, 아무리 살펴봐도 탈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 자리가 한국정치에 큰 부담이 되는 일이 또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