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승세만 이어질 것으로 점쳐졌던 전기차 시장에 예기치 못한 돌발변수로 경고등이 켜졌다. 차량용 반도체의 전 세계적인 품귀현상으로 완성차 업체는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는 데다, 부품업체도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 게다가 빠듯한 전기차 보조금 예산 탓에 소비자들의 구매 지연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6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5개월째 지속된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로 재고가 바닥나면서 국내 완성차 업계의 생산 차질도 현실화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코나·아이오닉5를 생산하는 울산1공장을 일주일간 휴업하기로 한 데 이어 그랜저·쏘나타를 전담해 온 아산공장 가동마저 여의치 않은 상태다. 현대차 관계자는 "반도체 부족으로 인해 아산공장의 감산 또는 휴업을 검토하고 있다"며 "구체적 방식과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기아와 한국지엠 역시 특근을 중단하거나 감축에 돌입했다.
암울한 전망도 잇따르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IHS마킷은 최근 발표에서 올해 1분기에만 자동차 생산량이 약 130만 대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고, 글로벌 컨설팅 기업 알릭스파트너스는 전 세계 자동차 업계의 올해 매출 감소가 606억 달러(약 68조 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전기차에 돌아올 내상에 있다. 전기차에 장착되는 반도체는 내연기관차에 비해 2, 3배 많다. 갈수록 전기차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단 얘기다.
반도체를 비롯해 미래차에 들어갈 전장부품의 취약한 공급망도 걸림돌이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미래차에서 전장 부품 비중은 내연기관차의 2배가 넘는 70%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국내 전장 부품 공급망이 취약해 자동차 산업의 지속가능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반도체 부족 장기화로 유동성 위기에 내몰린 영세한 자동차 부품업계 역시 약한 고리다. 자동차산업연합회에 따르면 1~3차 협력사 등 53개 부품업체를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48.1%가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답했다. 아울러 완성차 생산 물량 축소와 차량용 반도체 가격 상승 등을 이유로 응답 업체의 절반(49.1%)은 운영 자금 확보에 애로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당장 올해 상반기 중으로 자금조달이 필요한 업체도 전체 응답자의 28%에 달했다.
또 다른 적신호는 전기차 보조금에서 켜졌다. 보조금 예산이 늘어난 수요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보니, 올해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소비자도 속출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구매도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아이오닉5는 4만 대 이상, 기아 EV6는 2만여 대의 사전계약을 기록하고 있는데, 두 전기차 모델의 사전계약 물량만 해도 올해 보조금 수혜 예상 대수인 7만5,000여 대(5,250억 원)의 80%를 웃돈다. 여기에 테슬라가 정부의 보조금 제도 개편에 맞춰 모델3의 가격을 내리고 지난달에만 3,186대를 팔아치우면서 3월 보조금을 싹쓸이했다. 반도체 부족으로 아이오닉5와 EV6의 출고가 지연되면 보조금이 조기 소진돼, 보조금을 받을 수 없는 사전 계약 물량이 취소될 수 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전기차 수요가 많은 서울에서는 9월에 보조금이 소진되면서 계약 취소가 잇따랐다"며 "현대차·기아가 기록적인 사전계약 대수를 확보했지만 모두 구매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