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치 체제가 대의민주주의임를 표방함에도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한국인의 선호는 강한 리더 중심의 통치보다도 낮은 상황이다. 명지대학교 미래정책센터와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0월 진행한 조사(https://hrcopinion.co.kr/archives/17057)에 따르면, 강한 리더 중심의 통치에 대한 국민의 선호는 10점 만점에 5.54점이었던 반면,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선호는 그보다 약 1.5점 낮은 4.09점에 불과했다.
대의민주주의는 주권을 양도받아 정치를 이행하는 대리자 선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선호가 낮은 것에는 여러 요인이 있을 수 있으나, 대의제 기관인 국회, 정당에 대한 신뢰가 낮다는 점도 원인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정당은 대의민주주의하에서 국민주권주의를 이행하는 가장 기본적 정치집단으로, 국민의 대리자가 될 후보자를 발굴, 양성해 공천한다. 그리고 이들이 국민의 선택을 받으면, 국회의 구성원이 되어 법을 만들고 행정부를 견제하는 등 정치의 중심이 된다. 이러한 대의제의 근본적인 기관인 정당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왜 낮은가? 정당이라는 조직 자체에 대해 국민들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그리고 정당은 어떠한 방향으로 변화, 발전해야 할 것인가? 명지대 미래정책센터는 한국리서치와 함께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지난달 5~8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한국 정당의 전반적인 활동에 대한 평가를 물은 결과, ‘불만족한다’가 40%, ‘매우 불만족한다’가 47%로 응답자의 88%가 불만족하다고 응답했다. 단 6%만 현재 정당의 활동에 만족한다고 응답한 조사 결과는 한국 정당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준다.
그렇다면 왜 국민은 정당에 대해 불만족하는 걸까. 응답자의 71%가 한국 정당이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전반적으로 정당은 자신의 사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는 것이다. 물론 정당의 주요 목적 중 하나는 정권 획득이다. 하지만 정당은 국민주권주의 이행의 기초 조직이기에 정권 획득만을 위해 활동한다는 평가는 매우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뒤이어 응답자의 12%는 ‘정당 간 정쟁이 심해서’, 11%는 ‘국민과 소통하지 않아서’를 이유로 들었다.
응답자들은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고, 정치참여를 독려하는 역할’을 정당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보았다. 한국 정치에서 정당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1순위, 2순위로 나누어 질문한 결과, 50%의 응답자가 1순위로 국민의 이익 대변 및 정치참여 독려를 꼽았다. 2순위로는 ‘정책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역할’(28%)이 가장 많이 꼽혔다.
하지만 응답자의 77%가 한국 정당들이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고, 정치참여를 독려하는 역할’이 불만족스럽다고 응답했다. 2순위인 ‘정책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역할’에 대해서도 74%가 불만족하다고 답했다. 그나마 정책 연구와 개발에 대해서는 만족한다는 응답이 18%로 상대적으로 긍정적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당이 국민들에게 정책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정책 이슈의 공론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장 부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은 ‘정치적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역할’로 80%가 불만족하다고 응답했다. 정치는 갈등을 동반하지만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합의를 이루는 것 또한 정치이다. 이와 같은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하는 기성 정당들에 대한 질타와 경고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부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응답자의 56%는 시대가 변화해도 정당을 대체한 다른 정치집단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국민 역시 정당이 현대 민주주의에서 필수적인 집단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일반인의 정당 활동에 대해서도 응답자의 47%가 긍정적이라고 평가해 부정적이라는 응답(29%)보다 높았다. 국민들은 현재 한국 정당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만 정당의 중요성을 알고 있으며, 개인이 정당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것에 대해서도 긍정적이었다.
그렇다면 한국 정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날이 갈수록 사회적 가치는 다양해지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고 있다. 정당 역시 이러한 흐름에 맞추어 체질을 개선하고 보다 다양한 가치를 대변할 수 있도록 변화해야 한다.
한국 정치는 20대 국회를 제외하고는 2000년대에 들어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한 제3정당이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거대 양당 중심이다. 그리고 국민의 73%는 거대 양당 구조가 여러 집단을 대변하고 있지 못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기존 정당에 대해 국민의 인식이 상당히 부정적인 만큼 기성 정당은 변화를 위한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새롭게 등장하는 사회적 가치와 국민의 의견을 대변할 수 있는 새로운 정당의 등장도 필요하다. 현행 정당법상 정당은 설립이 쉽지 않다. 절차가 복잡할 뿐만 아니라 창당을 위해 필요한 당원의 수도 상당하다. 정당법은 1960년대 군사정권시절 만든 정당법에서 이어져 오고 있다. 특히 당시보다 창당을 위해 필요한 당원 수가 많아져 정당의 설립 요건이 더욱 엄격해졌다. 지나친 군소정당의 난립을 막고 정치적 질서를 확립할 필요는 있지만, 정당법이 다양한 국민의 요구를 대변할 수 있는 소수정당의 출현을 막아서는 안 된다.
특히 정보통신발달에 근거한 새로운 정당의 형태, 온라인 정당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정당에 가입되어 있지 않고, 앞으로도 정당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응답한 583명 가운데 16%는 온라인 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온라인 정당이 등장한다면 가입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시대적 흐름에 맞추어 온라인 중심의 정당도 정당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으로 주목해봐야 할 것이다.
향후 정당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높지 않다. 응답자의 22%가 정당의 수준이 낮아질 것이라고 보았고, 49%가 현재와 동일할 것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높아질 것이라는 희망적인 기대를 가진 응답자도 18%에 달한다. 비록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을지라도, 정당은 대의민주주의에서 중요한 조직이며 국민도 정당을 대체할 수 있는 조직은 없다는 것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 이제는 한국의 정당들이 변화된 모습을 보여줄 때이다.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고 시대적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정당으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김진주 명지대학교 미래정책센터 연구교수
박정석 한국리서치 여론조사 사업1본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