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물질 배출 조작' 고개 숙이더니... "기업들 실태조사 거부"

입력
2021.04.0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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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관협의체, 환경오염조사 등 9개항 권고
위반업체, "편향적·전문성 결여됐다" 거부
시민들, "반성도 없는 파렴치한 행태" 반발
권고안 즉각 수용·강력한 행정권 집행 촉구

수년 간 대기오염물질 측정치를 조작해오다 적발된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기업들이 주민건강역학조사 등 스스로 약속한 지원책마저 거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주민·전문가가 마련한 권고안을 “편향적 결정”이라 반박하며 일말의 반성조차 하지 않는 모습이다.

1일 전남도·여수시 등에 따르면 주민대표·관계기관·전문가·시민단체 등이 참여한 민관협력거버넌스위원회는 2019년 5월 출범 후 22차례 회의를 열어 지난 2월 여수산단 환경종합대책 권고안을 확정했다. 권고안에는 환경오염실태조사와 주민건강역학조사, 환경감시센터 설치 등 9개 대책이 담겼다. 이후 전남도는 설명회를 열어 환경오염실태조사와 주민건강역학조사 비용 53억3,000만원은 위반업체가 분담한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그러나 위반업체들은 "산단 기업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며 권고안을 거부하고 있다. “거버넌스 위촉 위원 대부분이 경험과 전문성이 부족하고, 소수 시민단체 위원을 중심으로 한 편향적인 결정이어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불과 2년 전 사건이 터졌을 때 대표까지 나와 고개를 숙였던 위반업체들이 돌연 입장을 바꾸자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여수산단유해물질불법배출범시민대책위원회는 이날 여수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업들이 대기오염물질을 불법 배출하던 때의 인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며 “반성도, 환경문제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도 없다”고 지적했다. 대책위는 권고안 즉각 수용과 강력한 행정권 집행 등을 촉구했다. 권고안을 계속 거부할 경우 해당 기업 항의방문과 집회, 위반업체 제품 불매운동, 국회와 정부에 강력 대응 요구에 나설 계획이다.

앞서 2019년 4월 환경부와 영산강유역환경청은 측정대행업체와 짜고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을 조작한 여수산단 등 사업장 235곳을 적발했다. 4년 간 조작 건수는 1만3,000여건에 달했다. 위반업체는 여수시민에게 사과하고 지원을 약속했으며, 전남도·여수시는 민관협력거버넌스위원회를 꾸려 권고안 마련 작업을 해왔다.

여수= 하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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