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죄가 아님을...

입력
2021.04.03 10:30
<30> 왓챠 ‘잇츠 어 신’

편집자주

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칼럼니스트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에 연재됩니다.


이야기가 주는 힘에 여러모로 기댈 수밖에 없었던 지난 일 년이었기에 개인적으로 아끼는 드라마가 적지 않았다. 그중 작년인 2020년을 보여줄 수 있는 단 한 작품을 꼽아야 한다면 결국 '이어즈 앤 이어즈'다. 인류가 상상할 수 있는 수많은 재난이 이어지는 미래, 나빠져만 가는 세계를 한 가족이 겪는 일을 통해 펼쳐 보인 영국 드라마 '이어즈 앤 이어즈'는 팬데믹 시대 직전에 도착한 것이 우연이 아닌 작품이었다. 2020년 전 인류가 맞이한 급격한 변화의 일부를 이 작품에서 미리 만나볼 수 있는데, 특히 난민 수용소에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퍼지는 장면은 팬데믹 상황에 대한 예언처럼 보일 정도다. 좋은 이야기에는 이따금 미래가 한발 앞서 도래하기도 한다.

'잇츠 어 신'은 '이어즈 앤 이어즈'와 '닥터 후'의 작가로 유명한 러셀 T. 데이비스가 크리에이터로 참여한 작품으로 2021년 1월 영국에서 방송되었고, 한국에는 지난 3월 왓챠를 통해 독점 공개됐다. 이번에는 미래가 아닌 과거로, 1980년대 런던으로 간다. 미지의 질병이 특정 공동체 사이로 퍼져나가던 시절이다. 원인을 알 수 없고 치사율이 매우 높은 질병이 남성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전염되고 있다는 소문만 무성하던 1980년대 초반부터, 소문이 현실이 되어가던 이후 10년 동안의 이야기를 담았다.

영국의 한 섬마을에서 자란 리치(올리 알렉산더)는 런던에 있는 대학에 합격해 고향을 떠난다. 로스코(오마리 더글러스)는 동성애자인 자신을 나이지리아로 보내려는 목사 아버지를 떠나 런던으로 도망친다. 콜린(캘럼 스콧 하웰스)은 재단사가 되기 위해 웨일스에서 런던으로 향한다.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성장한 곳을 떠난 소년들은 서로를 알아본다. 리치는 질(리디아 웨스트)과 애시(너대니얼 커티스)를 만나 친구가 되고, 로스코 역시 이들 무리에 합류한다. 콜린은 사수이자 유일한 친구였던 헨리 콜트레인(닐 패트릭 해리스)을 알 수 없는 질병으로 잃고 실의에 빠져 있다가 리치와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이 다섯 명이 '분홍궁전'이라고 이름 붙인 아파트에 함께 살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예상했겠지만 이 질병은 에이즈(후천성 면역 결핍증)다. 초기에는 다른 질병으로 오인되기도 했고 동성애자들을 위협하는 뜬소문으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HIV라는 바이러스가 원인임이 드러났다. 이 바이러스가 주로 남성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전염되어 퍼져나갔기 때문에 에이즈는 동성애자를 의미하는 낙인이 되었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제목이 '잇츠 어 신'인 것이다. 동성애를 죄악이라고 여겼던 시대와 사회에서, 에이즈는 형벌이었다. '잇츠 어 신'은 당시만 해도 확진된 순간 사형선고나 다름없던 질병의 공포 속에서 사회의 낙인까지 찍혀야 했던 '분홍궁전'의 친구들이 어떻게 그 시대를 통과하는지를 보여준다. 떠들썩하고 화려한 파티, 춤추고 노래하고 몸을 맞대며 정신없이 즐기던 이들의 일상이 에이즈에 대한 두려움에 잠식되어간다. 병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고 드라마 속 표현 그대로 "런던의 소년들이 끊임없이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인물들의 삶에 질병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음에도 '잇츠 어 신'은 에이즈에 대한 드라마가 아니다. '잇츠 어 신'은 시대와 질병보다 그 시대를 질병과 함께 살아내면서 끝내 자기 자신이고자 했던 인물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리치가 친구들에게 "나는 에이즈에 걸렸어"라고 말할 것이 예상되는 타이밍에 "나는 살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이 '잇츠 어 신'이 삶을 대하는 태도다. 리치가 부모가 정해준 전공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하겠다고 선언하는 장면은 실현되지 않는 커밍아웃과 동등한 위치에 있다. 내가 되는 일은 성정체성을 드러내는 데에서 끝나지 않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나의 행복을 위해 사는 일로 이어진다. '잇츠 어 신'은 믿음과 애정, 그리고 연민이 어린 시선으로 인물들을 바라보며 이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떻게 살았고, 어떤 순간에 울고 또 웃었는지, 어떻게 자기 자신이 되어갔는지를 보여주는 데 힘을 쏟는다.

'잇츠 어 신'은 삶과 죽음이 얼마나 불공평한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에이즈는 전염성이 있는 데다가 증상이 발현되는 속도가 매우 빨랐기 때문에 질병과 질병에 걸린 인간이 구분되지 않았다. 에이즈에 걸렸거나 잠재적 환자군으로 여겨진 동성애자들은 '전염성이 있는 불치병' 취급을 받았고, 대놓고 차별받는 혐오의 대상이었다. 런던의 성소수자 공동체는 질병과 싸우면서 혐오, 배제와도 싸워야만 했다. 싸움은 지난하고 함께하는 이들에게 상처를 남기기 마련이다. 콜린이 죽은 뒤, 분홍궁전의 친구들은 하나로 뭉치지 못한다. 로스코는 삶과 죽음을, 불공평함을 토로하며 말한다. "이 방에서 그 애와 살았고, 그 애를 사랑했어. 아침에 출근하고 엄마에게 전화하고, 착하게 사는 걸 봤어." 그랬던 친구가 갑자기 죽어버리는 세상에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싸울 수 있느냐고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바로 그 말의 힘 때문에, 로스코는 돌아와 싸우는 친구들과 함께한다. 그 애와 살았고, 사랑해봤기 때문이다. 삶에는 인간이 이해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과 고통이 필연적으로 닥쳐온다. 모두 언젠가 죽는다고 해서 죽음이 공평한 것은 아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어떤 방식으로 찾아올지 모른다는 점에서만 공평하다. 이런 세상 속에서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죽음 앞에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잇츠 어 신'은 살아 있었다는 사실 그 자체라고 말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흔적과 기억을 남기면서, 살아 있었다는 것.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받아들인 뒤로는 오직 자기 자신으로 살기를 원했고 살기 위해 싸웠던 리치가 죽음을 앞두고 했던 말도 같은 의미다. "사람들은 잊겠죠. 정말 즐거웠다는 것을요." 하지만 사람들이 잊어도, 리치와 친구들은 기억할 것이다. 사회의 낙인, 자기 안의 수치심,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리치는 사랑했고 즐거웠고 웃었던 일들을 기억하기로 선택하고 세상을 떠난다. 사랑하는 친구들은 그 모든 걸 잊지 않을 것을 믿으면서. '잇츠 어 신'은 이해할 수 없고 불공평한 죽음을 어떻게 기억할 것이냐고 묻는다. 그리고 이렇게 기억할 것이라고 대답한다. 에이즈로 죽은 동성애자 1인이 아니라, 연기를 사랑했고 즐겁게 살았고 행복하고 싶어 했던, 많은 사랑을 주었고 또 받았던 리치 토저로. 또 다른 구체적인 기억을 남기고 간 소중한 이름들로.

1980년대의 런던에 퍼져나가던 바이러스는 에이즈의 원인이 되는 HIV만이 아니었다. 수치심 역시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갔고 전염되었으며 병에 걸리든 걸리지 않았든 동성애자들을 공격했다. "동성애는 죄"라고 말했던 사람들, 죽음이 마땅한 형벌인 것처럼 손가락질하고, 부정한 것인 듯 존재를 묻어버리고, 한 개인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기회를 빼앗아 가려고 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바이러스가 바로 수치심이다. 아들의 현재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죽음까지도 타인의 탓으로 몰아가는 리치의 엄마에게 질은 말한다. "다들 죽어가요.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수치로 여기게 하고, 혐오하고, 제대로 기억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 때문에.

작품에서 교훈을 찾아내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방식의 감상이지만 '잇츠 어 신'에는 분명히 배울 점이 있다. 인간의 이해와 상식을 넘어서는 잔인한 질병이 세계적으로 창궐한 이후의 시대를 살아가는 2021년의 우리에게, 숫자 너머의 사람을 기억하고자 하는 '잇츠 어 신'의 태도는 여전히 유효하다. 또 하나, 2021년에도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을 사회에서 거부당하는 성소수자가 죽음을 택하고 있다. '잇츠 어 신'의 맺음으로부터 30년이 넘게 흐른 지금도 누군가는 혐오의 바이러스를 퍼뜨리며,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다들 죽어간다는 말을 들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증오의 말을 내뱉는다. 사랑이 죄라고 하고, 고통과 질병과 죽음이 형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그사이 사회가 나아진 것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지만, 제대로 기억하기로 한 사람들이 싸울 때 비로소 조금씩 세상이 변해간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죄가 아님을 아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 지금, 개인은 자기 자신이 되어 살고 사랑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여전한 혐오와 차별에 대응해야 하는 것은 사회의 시스템이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윤이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