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암에 직업 못 구해"… 체납자 돕는 '세금징수과' 사연

입력
2021.04.0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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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실직·폐업… 생계형 체납자 '복지 사각'
체납복지지원 TF, 기초생활수급 신청 도와
"악질 체납자는 추적하되 생계형은 도울 것"

“서울시 38세금징수과입니다. 세금을 체납하게 된 사정을 여쭙고, 필요하시면 복지 연계 상담을 하고자 전화 드렸습니다.”

지난달 29일 서울시 38세금징수과 상담사 주윤경(33)씨는 3년 동안 지방세 1,400여만 원을 체납한 A(46)씨에게 연락해 밀린 세금을 독촉하는 대신 ‘복지’ 얘기를 꺼냈다. 조사관이 세금 납부 가능성을 파악하기 위해 사전조사를 했더니, A씨는 3년 이상 소득이 전혀 없었고, 2년 전 전화 통화가 됐을 때 “건강이 좋지 않아 파산 신청을 준비한다”고 말한 기록이 있었다. 뭔가 사연이 있을 법했다. A씨는 50여 분간 상담하면서 경계심을 풀었고, 자신이 희귀암을 앓는 시한부 환자로 일을 할 수 없어 체납자가 된 사정을 털어놨다. 주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 뒤, A씨가 거주하는 지역 주민센터에 기초생활수급자 긴급 신청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끝까지 추적하여 반드시 징수한다’는 기조를 내걸고 체납자들을 벌벌 떨게 하는 서울시 38세금징수과가 ‘생계형 체납자’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세금 징수를 위해 조사하다 보면 질병과 실직 등으로 불가피하게 체납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두 팔을 걷고 나선 것이다.

이 업무는 38세금징수과가 지난달 신설한 ‘체납복지지원TF(상담사 2명·조사관 7명)’가 맡고 있다. 이들은 체납 기록만으로는 알 수 없는 생계형 체납자들을 찾아내 공공복지로 편입시키기 위해 체납자의 신고 소득, 직업 유무, 은행계좌 잔액, 현 자산(자동차·부동산) 가치, 거주지 등을 꼼꼼히 조사한다.

예컨대 은행계좌 잔액이 최저생계비인 185만 원 이하이거나 월 급여가 서울형 생활임금 기준으로 224만 원 이하인 사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휴·폐업한 사업장 근로자 등이 대상이 된다. 그러면 상담사들은 전화 상담을 통해 세세한 사정을 파악한 뒤 다시 한번 검증을 거쳐 지역사회의 복지제도를 연계한다. TF는 지난달 생계형 체납자 60명을 찾아냈고, 그중 56명의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도왔다.

세금 징수 부서가 ‘복지’에 적극 나선 이유는 행정과 현장 간 괴리 때문이다. 지자체 소속 사회복지사들은 개인의 금융권 부채 조회 권한은 있지만, 체납 여부 조회 권한은 없어 도움이 필요한 체납자까지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또 복지 혜택을 받으려면 당사자가 먼저 신청해야 절차가 진행되지만, 세금을 못 내서 쫓기는 신세인 체납자들은 두려움과 죄책감에 복지 혜택은 엄두를 못 내거나 신청 절차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생계형 체납자들은 세무공무원만 발견할 수 있었던 ‘복지 사각지대’로 남아 있었다.

TF는 특히 압류된 재산이 체납자의 복지망 편입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구제에 나섰다. 폐차 직전의 차량, 외곽 임야 등 자산 가치가 현저히 떨어지는 압류 재산은 공매 처분이 이뤄지기 어렵다. 공매되지 않은 압류물은 여전히 체납자 보유 재산으로 인정돼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에 장애물이 된다. 일용직으로 버는 월 9만 원이 소득의 전부지만, 9년 전 세무서에 압류된 선산이 공매가 이뤄지지 않아 기초생활수급자 심사에서 번번이 탈락한 체납자 B(61)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TF는 관할 주민센터에 B씨의 이런 사정을 입증하는 자료와 함께 수급자 선정을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병욱 서울시 38세금징수과장은 “올해 생계형 체납자로 추정되는 6,000명을 상담하고, 상담 후에도 이들을 지속 관리해 자립을 도울 것”이라며 “악질 체납자는 끝까지 추적해 징수하고, 생계형 체납자들은 최대한 돕겠다”고 말했다.


우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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