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사전에 '경질'은 없다? 넉달새 5명 '티 나게' 잘랐다

입력
2021.03.30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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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사람을 쫓아내듯 내보내지 않는다." "어떤 성과든 손에 들려서 내보낸다."

문재인 대통령 인사 스타일을 두고 여권 인사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다. '문책성 인사를 할 때도 명예롭게 퇴장시키기 위해 문 대통령은 고민을 거듭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젠 옛말이 된 듯하다. 최근 네 달 사이 문 대통령은 5명을 청와대·내각에서 과감히 내보냈다. 누가 봐도 '경질'로 읽히도록.


추-윤 갈등에… ①추미애 ②노영민 ③김종호

문 대통령 인사 스타일 변화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 갈등이 정국을 삼킨 지난해 연말 시작됐다. 추 전 장관이 첫 번째 경질 대상이었다. 지난해 12월 16일 정만호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추 전 장관이 사의를 표했다'는 소식과 "(사의 수용 여부를) 숙고하겠다"는 문 대통령 발언을 동시에 전했다. 말리는 제스처를 취할 필요도 없이 사표를 받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추 장관이 사태를 극으로 몰아간 데 대한 문 대통령의 분노가 반영된 결정이었다고 여권은 평한다.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김종호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도 문 대통령은 책임을 분명히 지웠다. 2주 뒤인 12월 30일, 이들은 김상조 전 정책실장과 함께 사의를 밝혔다. "국정 운영 부담을 덜고, 국정을 일신하는 계기로 삼아달라"고 말하면서다. 혼란한 정국의 탓을 본인들에게로 돌리는 이러한 발언을 정만호 수석은 숨기지 않고 소개했다.

김상조 전 실장을 제외한 2명의 사표는 다음날 수리됐다. 후임자도 같은 날 임명됐다. '빨리 털고 가겠다'는 의지이자 '경질성 인사'라는 신호였다. 김종호 전 수석은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마땅히 책임지는 것이 도리"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특별히 감사하다"와 같은, 추 전 장관에게 했던 의례적 발언조차 더하지 않는 것으로 불편함을 표했다.


LH 블랙홀에… ④변창흠 ⑤김상조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문재인 정권과 공직사회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번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땅 투기 의혹으로 물러나게 됐다. 변 장관이 먼저 사의를 밝히고, 문 대통령이 수용하는 형식은 같았다. 그러나 이달 12일 변 장관 교체를 발표하면서 정만호 수석이 전한 문 대통령 발언은 이전보다 강도가 셌다.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루 전에 정부 합동조사단은 3기 신도시 투기가 의심되는 LH 직원 20명 중 11명이 변 장관의 LH 사장 재임 시절 토지를 매입했다고 공개했는데, 이것이 문 대통령의 단호한 결정을 이끌었다는 후문이다.

김상조 전 실장도 29일 황급히 책상을 정리했다. 전셋값 인상률을 5%로 제한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국회를 통과하기 직전 전셋값을 14% 올렸다는 보도가 나온지 불과 17시간 만이었다. 문 대통령은 후임도 곧바로 임명했다. '공백 없는 국정 운영'이 빠른 인사 배경이었다지만, '숙고의 시간'이나 '수고했다'는 의례적 인사조차 생략함으로써 불명예 퇴진임을 분명히 했다. 김 전 실장은 "죄송하다",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인 채 1년 9개월 근무한 청와대를 떠났다.


지지율 꺾이자 변했다…'레임덕 방지용' 시각도

임기 초ㆍ중반 문 대통령은 인사와 관련한 외부의 지적에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부동산 시장 불안정에 대한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책임론이 꾸준히 나왔지만, 3년 7개월이나 기용한 게 대표적이다. "국면 전환용 인사는 없다"는 평이 붙는 이유였다.

문 대통령이 최근 보여준 모습은 그래서 더욱 매섭다.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현상)을 방지하기 위함'이라는 시각으로 이어지는 것도 그래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본인이 스스로 물러나는 모양새를 갖춰 최소한의 명예를 갖춰줄 뿐, 상황 타개를 위한 인사라는 성격이 짙어졌다"며 "대통령 지지율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추ㆍ윤 갈등, LH 사태를 거치며 문 대통령 지지율은 30%대로 내려앉았다.


신은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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