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투기 근절 종합세트' 성난 민심 달래기엔 "늦었다"

입력
2021.03.3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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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예방-적발-처벌-환수' 4단계 20개 대책 발표
보궐선거 앞두고 내놓을 대책은 다 내놓은 셈
전문가들도 "국민 신뢰도 높아지지 않을 것" 평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된 지 한 달 만에 정부가 20개에 달하는 '부동산 투기 근절 종합세트'를 내놨다. 4·7 재보궐선거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LH 사태에 대한 국민 분노가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예방부터 환수까지 꺼낼 수 있는 모든 카드를 끌어모은 모양새다.

하지만 이 같은 강력한 대책도 이미 땅에 떨어진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민심 이반의 근본적인 원인은 그동안 누적된 부동산 실정에 있는 데다, 이번 대책도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 "야단 맞겠다"...내놓을 대책 다 끌어모은 정부

정부는 29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제7차 반부패정책협의회를 열고 '부동산 투기 근절 및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문 대통령은 "야단맞을 것은 맞으면서 국민의 분노를 부동산 부패의 근본적인 청산을 위한 동력으로 삼아주기 바란다"며 "이번 사건을 철저하고 단호하게 처리하는 한편 부동산 부패의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까지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보다 강한 어조로 '일벌백계'를 강조했다. 그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 참석해 "범정부 총력 대응체계 구축을 통해 현재 발생한 불법행위를 철저히 찾아내겠다"며 구체적으로 "정부합동 특별수사본부를 2배로 확대해 1,500명 이상으로 개편하고, 43개 검찰청에 부동산 투기사범 전담수사팀을 편성해 500명 이상의 검사, 수사관을 투입할 것"이라고 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라는 약속대로 이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표한 투기근절 대책에는 △예방 △적발 △처벌 △환수 등 4개 분야 20개 과제가 총망라됐다. 홍 부총리는 "부동산 부패사슬을 끊어내고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대책을 마련했다"면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전방위적으로 검토했다"고 했다.

정부가 가장 힘을 준 예방 대책의 핵심은 공직자 재산등록 강화다. 현재 4급 이상 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원 대상인 재산등록을 전체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그밖에 투기적 토지 거래 유인을 없애기 위해 단기보유 토지에 대한 양도세율을 60~70%로 높이고 비사업용 토지에 대한 특별공제를 배제하는 방안도 내놨다.

적발 및 처벌 대책으로는 부동산거래분석원을 출범하고, 부동산 교란행위에 대한 신고 포상금을 최대 10억 원까지 높이는 방안이 발표됐다. 부동산매매업에 등록제 도입은 물론 땅 중심의 기획조사도 실시된다. 정부는 특히 비공개·내부정부 부당이용행위 등 부동산 시장 4대 교란행위에 대해 고의성, 중대성, 상습성이 인정되는 경우 부당 이득액에 비례해 가중처벌하기로 했다.

환수 영역에선 4대 교란행위에 대해 부당이득액을 최대 5배 환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정부는 또 투기 목적으로 취득한 농지에 대해 처분의무 기간 없이 강제 처분 절차를 집행하고, LH 등 부동산 업무 관련 종사자는 대토보상 등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또 보상비를 노리고 심은 수목의 경우 보상에서 빼는 등 보상 가액 산정도 엄격히 이뤄질 예정이다.

부동산 실정에 이미 민심 이반...대책도 너무 늦고, 효과도 크지 않아

이전에 없던 강력한 반부패 대책이지만, 민심을 돌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번 대책이 LH 사태 의혹을 제기한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의 발표가 있은 지 4주가 지난 상황에서 뒤늦게 나온 데다, 민심 이반은 집값 폭등 등 문 정부의 누적된 부동산 실책이 원인에 있기 때문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당정청이 강력한 수습책을 LH 사태 초기에 내놨어야 하는데 ,이미 3주 이상 시간이 흐른 상태”라며 “성난 민심 때문에 끌려가는 식의 인상을 줄 수 있고, 선제적으로 대책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에 효과도 반감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대책 자체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표가 따라붙는다. 무엇보다 공직자의 땅 매수가 내부 정보를 악용한 것이라고 증명하는 게 까다롭기 때문이다.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LH 직원 대다수도 "개인적인 판단에 의한 투자"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전 공직자가 재산을 등록하더라도 지인이나 친지, 혹은 그밖의 제3자를 통한 차명투자까지 적발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투기 대책을 내놓으면서 LH를 중심으로 주택 공급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도 국민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문제가 불거진 LH 직원 몇 명 처벌한다고 해서 공공주도 개발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가 높아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주택 공급 속도를 조절하더라도 공직사회의 투기 문제를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그간 허술했던 직원 투기 방지 시스템을 LH 내부에서부터 강화하는 것이 선행돼야 하며 관련 교육도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 대책은 효과에 비해 비용만 너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체 공직자 재산등록이 대표적이다. 7급 공무원 A씨는 "6급 이하의 경우 업무 관련자가 아니면 부동산 정책과 관계도 없는데 큰 의미가 있을까 싶다"며 "차라리 조사 전담반을 구성해 운영하면 실효성이 더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 손영하 기자
강진구 기자
원다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