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 정국의 신호탄인가. 북한이 25일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2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지난해 3월 29일 초대형 방사포 발사 뒤 1년 만이자,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다.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어 위협적인 탄도미사일은 사거리와 무관하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제1874호 위반이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우리 군은 오전 7시 6분, 7시 25분경 북한 함경남도 함주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된 단거리 미사일 2발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해당 미사일은 약 450㎞를 날아 동해상에 떨어졌고 비행고도는 약 60㎞로 탐지됐다. 합참 관계자는 "한미 정보당국은 단거리 탄도미사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정밀 분석 중"이라며 "미사일은 해상이 아닌 지상에서 발사됐다"고 밝혔다.
미국의 정권 교체기마다 도발을 감행해온 전례를 감안하면 북한의 도발은 예견된 바다. 그러나 이번 도발은 시점 측면에서 예상을 벗어난 측면이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검토가 아직 끝나지 않았고 25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을 앞두고 있었다. 바이든 시대의 대북정책이 정립되기도 전에 선제 도발에 나선 것이다. 미 고위 당국자는 지난 21일 북한의 순항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도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은 아니다"라며 북한과의 대화의 문을 열어둔 상태였다.
한반도 주변 환경이 재편되는 시점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최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의 동아시아 순방으로 한미일 3각 동맹 강화에 나서고 있는 한편으로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밀착도 한층 강화하고 있다. 미국이 민주주의와 인권 등을 기반한 '가치 동맹'을 앞세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 친서 교환과 중러 외교장관 회담 등으로 '반미공조'를 다지고 있다. 이러한 구도가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을 가져왔다는 해석도 있다. 북한이 유엔 안보리에 회부된다고 해도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뒷배가 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임기 말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재가동하려는 우리 정부는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청와대는 이날 서훈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긴급회의를 열고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NSC 상임위원들은 "미국의 대북정책 검토가 진행되는 가운데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이뤄진 데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북한을 자극할 만한 표현을 피한 것에서 청와대와 정부의 고민이 읽힌다.
미국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단거리'일 경우 탄도미사일 발사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았던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바이든 행정부는 대외정책에서 규범과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에 대한 입장 표명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지만, 대북정책 검토가 끝나기도 전부터 북한과 척지는 상황이 조성되는 것은 부담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바이든 행정부를 교묘하게 테스트한 것"이라며 "바이든 행정부로선 대북정책 검토가 끝나기도 전에 북한을 세게 몰아붙인다면 대화의 문은 닫혀 버리는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모른 척 지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미국의 반응은 향후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가늠할 척도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다음주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일 안보실장 협의에서 한미일 간 조율된 대북 메시지가 발신될 수도 있다.
이번 발사가 완성단계로 접어든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한미 외교소식통들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대화와 압박 여지를 열고 비핵화를 견인하기 위한 동맹국 간 협력을 강조하는 원론적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경우 북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 개입을 이끌어내기 위한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