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의 시대가 오고 있다."
지난해 세계 최고의 그래픽카드 제조사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의 한 마디에 전 세계 정보통신기술(ICT)업계의 이목이 메타버스에 쏠렸다.
메타버스란 가상(meta)과 세계(universe)의 합성어로 가상 공간에서 현실과 다름없이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1992년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우 크래시'에서 처음 소개됐다. 소설에서는 고글과 이어폰을 착용한 사람들이 가상의 공간에서 '제2의 사회생활'을 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2018년 세계적인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한 '레디 플레이어 원'이란 공상과학 영화에선 메타버스가 완벽히 구현된 미래를 보여줬다.
메타버스가 현실이 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청소년들이 대표적인 메타버스 서비스 '로블록스'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고 있어서 사회 문제가 될 정도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 로블록스의 기업가치는 우리 돈으로 40조원에 육박한다.
사실 메타버스는 우리에게 완전히 생소한 개념은 아니다. 2000년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싸이월드'도 기초적인 메타버스로 볼 수 있다. 싸이월드에서는 이용자가 자신을 닮은 아바타를 만들고 자신만의 공간인 '미니홈피'를 꾸민다. 남들보다 더 개성있는 아바타와 미니홈피를 만들기 위해서는 싸이월드 내에서 통용되는 가상화폐인 '도토리'를 구입해야 한다. 단순한 구조지만 메타버스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싸이월드가 2차원(2D) 공간에서 캐릭터를 보여줬다면 로블록스는 3D 입체 가상세계로 전선을 확대했다. 할 수 있는 콘텐츠도 무궁무진하다. 로블록스는 단순히 이용자들이 게임을 만들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고, 이용자들이 직접 게임을 만들거나 남들이 만든 게임을 즐기는 방식이다. 2006년 첫 서비스 이후 지금까지 이용자가 만든 게임만 5,000만 개에 달한다.
로블록스에서 게임 아이템 등을 구입하기 위해선 가상화폐인 '로벅스'가 필요하다. 로벅스는 현금으로 직접 살 수도 있지만, 게임 내 활동으로도 벌 수 있다. 현재 100로벅스는 약 1.2달러 정도로 환전되는데, 개발자는 100로벅스 당 35센트의 수익 배분을 받는다. 지난해 약 127만 명에 달하는 로블록스 내 개발자들이 벌어들인 수입은 1인당 평균 1만 달러(약 1,130만 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상위 300명의 수익은 약 10만 달러에 달한다.
이런 높은 자유도 때문에 로블록스는 전 세계 10대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미국 청소년의 55%가 로블록스에 가입한 적이 있으며, 월 활성 이용자가 1억 5,000만명에 이른다. 로블록스의 일 사용시간은 평균 156분으로, 틱톡(58분)이나 유튜브(54분)를 압도하는 수준이다. Z세대들은 로블록스를 게임 플랫폼을 넘어 현실과 동일하게 경제활동을 하는 또 다른 사회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 보여준 진정한 메타버스는 아직 구현되지 않았다. 가상을 실제 현실처럼 보여줄 수 있는 그래픽 기술력이 따라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ICT 업계에서는 가상현실(VR) 기술이 점차 진화하면서 올해가 '메타버스 상용화의 원년'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VR 기기의 시초는 1968년 미국의 컴퓨터 공학자 이반 서덜랜드가 만든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다. 하지만 당시 컴퓨팅 기술로는 서덜랜드의 개념을 제대로 구현할 수 없었다. 2016년 구글, 페이스북의 자회사 오큘러스, 삼성전자 등이 잇따라 VR 기기를 내놓으면서 큰 주목을 받았지만 대중화에는 실패했다. VR 기기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멀미나 어지럼증이 유발된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는 몸은 가만히 있는데 눈으로 보는 화면이 바뀌는 인지 부조화 때문이다. 특히 VR 콘텐츠가 만든 가상환경은 실제의 경험 값과 다른 만큼 두 감각의 불균형이 발생하기 쉽다.
VR 기기는 바로 눈 앞에 있는 2~3인치 크기의 디스플레이에 100인치 이상의 가상스크린과 90도 이상의 넓은 시야각을 갖는 허상 이미지를 사용자에게 제공한다. 멀미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높은 해상도, 빠른 처리속도로 화면을 안정화 하는 등 현실과 괴리감을 덜 느끼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VR 업체들은 인간이 입체감을 느끼는 원리를 그대로 활용했다. 사람의 양쪽 눈은 약간 다른 위치에 있어 '양안시차'가 발생하고, 뇌는 양쪽 눈에서 들어온 시각 정보를 모아서 하나로 합친다. 이 과정에서 원근감이나 깊이감을 느끼는 것이다.
VR 기기도 양안시차를 고려해 양쪽 눈에 다른 화면이 보이도록 고안됐다. 양 눈에 각각 다른 시각적 정보를 보내면서 뇌는 가상의 이미지를 실제 공간인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또 머리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센서도 탑재해 사람의 움직임을 측정하여 시선에 맞는 영상을 재생해준다. 결국 뇌를 얼마나 잘 속이느냐에 따라 VR 콘텐츠의 생생함이 결정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인지 부조화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VR 기기가 적어도 한쪽 눈 기준 2,121×2,121 이상의 해상도를 갖춰야한다고 말한다. 작은 화면에 가로 2,121개, 세로 2,121개의 픽셀을 각각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할 수 있는 반도체와 통신 기술이 갖춰져야 하며, 선명한 화질을 보여줄 그래픽과 디스플레이 기술도 필요하다.
지난해 10월 오큘러스가 새롭게 내놓은 '퀘스트2'는 1,832×1,920 해상도를 구현하면서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이 제품은 전세계적으로 300만대 이상 판매되는 흥행을 거두고 있다. 세계 최대 IT업체인 애플도 내년 중 VR 기기를 출시하면서 메타버스 생태계에 진입할 것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미국의 유명 래퍼 릴 나스 엑스는 지난해 11월 로블록스에서 가상콘서트를 개최했다. 이 콘서트에서는 이틀 동안 무려 3,000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지난해 미국 대통령 선거 기간 중 조 바이든 대통령은 닌텐도 기반의 메타버스 게임인 '모여봐요 동물의 숲'에서 선거 유세를 펼치기도 했다. 전세계 수많은 메타버스 이용자들은 아직 PC와 스마트폰으로 이를 즐기고 있다. 이들은 메타버스를 완전히 구현할 수 있는 VR 기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