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잉글랜드 헨리6세의 왕권을 노린 랭커스터- 요크가의 왕위 쟁탈전이 '장미전쟁(Wars of the Roses, 1455~1485)'이란 낭만적인 이름을 얻은 까닭이 두 왕가의 문장(紋章) 때문이었단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랭커스터가의 문장은 붉은 장미였고, 요크가는 백장미였다. 30년을 끈 전쟁의 양상은 물론 달콤하지 않았다. 오히려 "역사상 잉글랜드 영토 내에서 빚어진 가장 치열하고 잔혹한 전투"가 그 전쟁 중에 빚어졌다. 1461년 3월 29일, 때늦은 눈보라가 퍼붓던 요크셔 타우턴(Towton) 들판에서 쌍방 5만 명이 두 시간여 동안 전투에서 약 1만 명이 숨졌고, 요크가의 에드워드4세가 왕권을 계승했다. 전쟁의 최종 승자는 1485년 보스워스 전투에서 승리하며 튜더 왕조를 연 랭커스터가였고, 이후 백장미는 시련의 세월을 견뎌야 했다.
유럽 유력 가문의 문장에는 독수리나 용, 사자, 페가수스 같은 위용과 전설의 맹수들이 흔하지만 드물게 꽃으로 품격을 과시한 예도 적지 않았다. 프랑스 루이 왕가의 백합, 영국의 장미가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전위에 꽃(식물)의 깃발을 들었던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15~16세기 일본 센고쿠(戰國) 시대의 무사들이었다. 오다 노부나가의 모과꽃,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오동나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제비꽃이 대표적인 예다. 그들은 품격이 아니라 피고 지는 식물의 생명력을 중시했다. 그래서 화려한 꽃보다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가난한 풀'들을, 제비꽃과 패랭이, 냉이를 사랑했다.
일본 시즈오카대 농학자 이나가키 히데히로가 쓴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은 전란 속에 나서 전사로 성장해 전장에서 숨져간 무사들이 실은 대단한 원예가였음을 다양한 일화로 부각한 책이다. 임진왜란의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병사의 발가락 동상을 방지하기 위해 다비(양말) 속에 고추를 넣게 한 덕에 조선인이 오늘의 김치를 먹게 됐다는 이야기, 그가 구마모토성 농성전을 승리한 건 성의 다다미를 짚 대신 토란 줄기로 엮어 장기 농성전의 전투식량으로 쓴 덕이었다는 이야기도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