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남 이어 충청까지 대규모 미달 사태...벼랑 끝 몰린 지방대

입력
2021.03.22 20:00
24면

편집자주

이왕구 논설위원이 노동ㆍ건강ㆍ복지ㆍ교육 등 주요한 사회 이슈의 이면을 깊이 있게 취재해 그 쟁점을 분석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코너입니다. 주요 이슈의 주인공과 관련 인물로부터 취재한 이슈에 얽힌 뒷이야기도 소개합니다.


‘신입생 모집 실패로 급속하게 침몰하고 있다.’ ‘신입생 정원 20% 미달로 대학 위기 자초한 총장은 퇴진하라’.

15일 전북 익산시 원광대 캠퍼스. 새 학기를 맞아 활기 넘쳐야 할 캠퍼스지만 대학본부에는 박맹수 총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현수막들이 걸려 있어 어수선했다. 원광대 교수협의회와 직장노조가 2021학년도 신입생 미달 사태의 책임을 물어 박 총장 퇴진운동을 벌이고 있기 때문. 원광대는 2021학년도 모집정원(3,543명ㆍ정원 내) 중 710명이 등록하지 않아 신입생 충원율 79.9%를 기록했다. 32명이 미등록했던 지난해(충원율 99.5%)에 비해 20%포인트 가까이 낮아진 수치다. 원광대 관계자는 “전북 출신 학생이 45% 정도를 차지하는데 도(道) 인구 감소세로 지원자가 줄어든 영향이 크다”며 “학생이 많은 수도권에서 학생을 끌어와야 하는데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대면 홍보를 제대로 못한 점도 영향이 있었다”고 말했다.

앞선 7일에는 경북 경산 소재 사립대인 대구대의 김상호 총장이 신입생 충원율(80.8%)이 전년보다 19%포인트 폭락한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 결국 직위해제되는 등 학령인구 급감 충격을 받은 지방대들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지방 중위권 대학 덮친 신입생 미달 쇼크

전북과 대구 지역의 중위권 대학인 원광대와 대구대의 대규모 신입생 미충원 사태는 학령인구 급감 여파가 전문대뿐 아니라 지방 4년제 대학에도 본격적으로 닥쳤음을 보여준다. 지난해 역대 최저 수능 응시자(42만6,344명) 숫자가 보여주듯 지방대들이 미처 대비도 못 한 사이 학령인구 급감 쇼크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 것이다.

원광대의 경우 2016년 산ㆍ학 연계를 촉진하는 교육부의 프라임 사업에 지원하면서 인문ㆍ사회과학 분야의 정원(535명)을 줄이고 공대ㆍ농식품대 정원을 크게 늘린 결정이 발목을 잡았다. 올해 공대(충원율 68.2%)와 농식품대(충원율 68.6%)에서 대규모 미달 사태가 발생한 것. 대학의 정원 예측 실패, 배후 지역의 학령인구 감소, 코로나 사태 등이 복합적으로 신입생 미충원 사태의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입시 전문가들은 수험생 감소로 지난해 상향 지원 추세가 나타나면서 특히 지방의 중위권 대학이 타격을 받았다고 진단한다.

예전 같으면 지역거점 국립대에 지원할 학생들이 수도권 대학으로, 지방 중위권 대학에 지원할 학생들이 지역거점 국립대에 지원하면서 지방 중ㆍ하위권 대학 입학자원이 고갈됐다는 분석이다. 원광대 공대에서 만난 수도권 출신 신입생 A(25)씨는 “군에 다녀온 뒤 대입을 준비했는데 올해는 꼭 대학에 가야 할 상황이었다”며 “점수를 낮춰 원광대와 충청권의 다른 대학 2곳을 지원했는데 결과를 보니 전북대에 지원했어도 합격 가능한 점수였다”고 말했다.

우연철 지학사 입시전략연구소장은 “지방의 중위권 대학들이 올해 특히 더 고전했다”면서 “이 대학들은 당분간 입학 자원 공동화에 따른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 소장은 “현 상황에서 전형방법을 바꾸는 식의 미세 조정으로 학생들을 유인하는 시도는 너무 늦었다”며 “정원을 감축하거나 학생을 유치할 첨단학과에 투자하는 것 아니면 해법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재학생들도 학령인구 감소 쇼크를 체감하고 있었다. 원광대 4학년 B(25ㆍ생명과학부)씨는 “1, 2학년 때만 해도 대형 강의실에도 빈 자리 찾기가 힘들었는데 요즘은 강의실이 썰렁하고 과제 발표를 위한 모둠을 짜기도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같은 과 C(25)씨도 “코로나로 비대면 수업이 많아지면서 반수를 하거나 수도권 대학으로 편입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늘어난 현상이 확연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에 신입생 급감 현상이 더해지면서 대학 주변 상권도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500여 개의 원룸이 밀집한 원광대 인근 신동 원룸촌의 경우 300만~500만 원인 연세(1년치 납입) 비용에서 50만~100만 원 깎아주는 원룸 매물들이 나왔다. 부동산 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신창혁(39) 대표는 “학교와 거리가 먼 원룸이라고 해도 지난해에는 3월 말이면 다 나갔는데 올해는 4, 5월까지도 공실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학교 앞 맛집으로 알려진 A식당은 점심시간인데도 11개 테이블이 모두 비어 있었다. 이 식당을 운영하는 채운석(64)씨는 “10년 전에는 의대ㆍ한의대 말고도 수도권에서 내려오는 학생들이 많았고 학교 앞도 북적거려 직원을 5명이나 썼다”면서 “그때 비하면 지금은 매상이 50%도 안 나온다”고 울상을 지었다. 채씨는 지금 자신과 아내, 직원 1명만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벚꽃도 안 피었는데 왜 벌써…비상등 켜진 충청권

'벚꽃이 피는 순서대로 대학 문을 닫는다’는 말은 학생 수 급감으로 폐교 위기에 빠진 지방대의 현실에 대한 대학가의 자조적 표현이다. 역설적으로 벚꽃이 늦게 피는 수도권은 비교적 위기에서 안전하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수도권에서 1시간~1시간 30분 거리인 충청 지역의 경우 지난해까지 신입생 충원에 대해서는 걱정이 없었지만 올해 상당수 4년제 대학에서 신입생 미달사태가 발생했다. 대전대는 90.82%, 배재대 88.3%, 목원대가 88.6%의 충원율을 기록했다. 지난해 이 대학들의 충원율은 모두 90% 후반이었다.

올해 충원율 80%대 후반을 기록한 대전 소재 한 대학 관계자는 “학내 구성원들끼리 ‘우리는 벚꽂이 피려면 아직 멀었는데 벌써 문 닫을 위기가 왔냐’고 동요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재대 4학년 정우성(26ㆍ전기공학과)씨는 “올해는 미달이 많이 생겨서 그런지 우리 학교에서도 이제 신입생들에게 노트북을 준다, 스마트폰을 준다는 얘기가 학생들 사이에서 돌고 있다”고 했다. 광주 호남대의 경우 지난해 신입생 유치를 위해 최초 합격 후 등록하면 아이폰, 충원 합격 후 등록하면 에어팟을 준다는 조건을 내걸기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수도권 대학 선호 현상이 극심한 상황에서 학령인구 감소는 같은 권역에 있더라도 조금이라도 수도권 접근도가 높은 학교에 대한 선호 현상으로 나타난다. 강원권의 경우 영동과 영서 지역 대학 간 충원률 격차가 대조적이었다. 서울 동부권에서 1시간 거리인 춘천 소재 한림대는 충원율 99.9%를 기록한 반면 강릉에 있는 가톨릭관동대는 539명이 미달, 등록률 73.7%에 그쳤다. 김민수 가톨릭관동대 입학처장은 “학교 내부적으로 2030년 정도로 예상하고 있던 신입생 숫자가 올해 기록돼 충격”이라고 말했다. 강원 지역 한 대학 입학처장은 “충원율을 발표하지 않은 학교들도 있고 교직원 가족이나 친척들에게 일단 등록만 하도록 해 충원율을 높이는 편법을 공공연히 쓰는 학교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학비와 지역 내 위상으로 인기가 많은 지역거점 국립대들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 지난해 9개 거점대학은 모두 충원율 99.7% 이상으로 사실상 정원을 모두 채웠지만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국회 교육위원회 김병욱 의원(무소속ㆍ포항 남구 울릉군)이 각 대학에서 취합한 자료에 따르면 9개 지역거점 국립대학 중 제주대를 제외한 8개 학교가 정원을 못 채웠다. 전남대(96.7%)는 90% 중반대 충원율을 기록했는데 모집정원(4,207명)보다 등록포기ㆍ미등록인원(5,277명)이 더 많았다. 중복 합격 후 상당수가 수도권 대학에 입학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올해 69명의 미등록자가 발생한 경북대의 한동석 입학처장은 “대학을 통폐합(상주대)하면서 상주캠퍼스의 충원율이 떨어진 측면이 있다고 해도 경북대 역시 위기 상황이라는 점은 분명하다”면서 “올해 결과를 토대로 학제 개편을 포함한 장기발전계획을 수립할 TF를 출범시킨 상황”이라고 말했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지역거점 국립대학들은 정부 지원을 믿고 안이하게 대처했고 지방 사립대는 학생 장사로 돈을 벌면서 경쟁력을 키우는 일을 등한시했다”며 “대학정원보다 11만 명 이상 부족해지는 2024년까지 각고의 쇄신 노력이 없다면 서울 소재 대학, 서울 명문대 제2캠퍼스, 거점국립대를 제외하고는 안심할 수 있는 대학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엇갈리는 이해관계…대학 정원 조정은 고차방정식

학령인구 감소세가 단시간 내 반전될 가능성은 희박하므로 정원 조정, 학교 통폐합, 성인직업교육 확대, 한계 대학 폐교 등 대학구조 개혁은 발등의 불이다. 특히 정원 감축은 직접적 효과를 볼 수 있는 개혁방안. 그러나 수도권대와 지방대 간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점에서 추진은 만만치 않다. 수도권의 학생 싹쓸이 현상을 위기의 가장 큰 원인으로 보는 지방대들은 서울과 수도권 대학 중심의 과감한 정원 감축을 주문한다. 최현재 군산대 입학처장은 “사립대 입학처장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청소직원도 줄이고 복사용지도 아끼고, 교수들은 연구 대신 신입생 모집에 진력하는 등 비상체제”라면서 “최소한 수도권 대학의 정원 외 입학 정원부터라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0년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의 정원은 7만2,108명이지만 전체 학생 수는 8만5,261명으로 1만2,926명이 정원외 전형으로 입학했다.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대부분의 지방대는 육성이 아니라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미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은 지났다고 보지만 수도권 대학 정원 감축을 포함한 전체 대학의 정원 감축 논의를 더 늦춰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교육당국은 수도권 중심 정원 조정을 요구하는 지방대의 주장은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송근형 교육부 고등교육정책과장은 “정원외 입학자들은 농어촌학생, 장애인, 탈북자 등 사회적 취약계층이 많다”면서 “지방대를 살리기 위해 수도권대의 정원외 전형을 줄일 경우 지원자 입장에서는 이를 차별로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교육부는 다음 달 지방대 지원책을 포함한 ‘대학의 체계적 관리전략’을 발표하면서 재정지원 사업의 수도권 대학 편중현상을 막을 수 있는 제도개선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이왕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