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하게 ‘출근’한 남편이 죽었다. 혼자가 아니었다. 네 남자가 함께 거액을 강탈하려다 경찰 총격으로 차와 함께 불탔다. 베로니카(비올라 데이비스)는 당황스럽다. 돈 잘 벌어오고 아내 사랑이 지극한 남편 해리(리엄 니슨)가 강도인 줄은 몰랐다. 엘리스(엘리자베스 데비키)도 마찬가지다. 폭력적이지만 달콤하기 그지 없는 남편이 범죄를 행하다 죽을 줄 상상치 못했다. 린다(미셸 로드리게스) 역시 사고뭉치 남편이 골치였으나 강도로까지 나섰다가 비명횡사 할 줄 생각지 못했다.
남편들을 잃고 슬픔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에 여자들에게 위기가 닥친다. 단순한 생활고 문제가 아니다. 베로니카에게는 시의원 선거에 나선 암흑가 거물 자말이 찾아온다. 해리가 자신의 돈을 훔치려다 죽으면서 돈이 다 타버렸으니 한 달 안에 변상을 하라고 다그친다. 한번도 보지 못했던 시의원 톰(콜린 패럴)은 장례식에 참석해 베로니카에게 뭐든 필요하면 찾아오라는 아리송한 말을 던지고 간다. 앨리스는 생계 대책이 아예 없어 당장 길거리에 나앉을 판이다. 린다는 남편이 도박으로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까지 사채업자에게 넘긴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사태는 좀 더 복잡해진다. 베로니카는 가족 운전사로부터 남편이 죽기 전 줬다는 사설 금고 열쇠를 넘겨 받는다. 금고를 열어보니 수상쩍은 다이어리가 있다. 촘촘한 메모와 더불어 어느 건물의 설계도가 끼여 있다. 베로니카는 직감한다. 남편 해리가 600만 달러를 훔치기 위해 또 다른 강도 모의를 비밀스레 했다는 것을.
베로니카는 남편의 ‘작전’을 실행하기로 결심한다. 자말의 동생 제이틈(대니얼 칼루야)이 가하는 위협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돈이 시급했다. 베로니카는 남편과 함께 숨진 사내들의 아내들을 규합한다. 각자 경제적으로 난처한 상황일 테고, 가장 믿을 만한 사람들일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시작부터 손발이 잘 맞을 리가 없다. 엘리스는 사격은커녕 운전도 할 줄 모른다. 린다는 베로니카의 저의를 의심한다. 제이틈은 베로니카 주변 인물을 처치하며 압박한다. 베로니카는 리더십을 발휘하며 동요하는 린다와 엘리스에게 이렇게 일갈한다. “우리는 남들에게 없는 장점이 있어. 여자가 이 일을 하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거든.”
영화는 1980년대 영국에서 TV드라마와 소설로 인기를 모았던 린다 라 플라테의 동명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감독은 스티븐 매퀸. 2014년 ‘노예 12년’으로 오스카 작품상을 거머쥔 대가다. 원작은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한 반면, 영화는 2010년대 미국 시카고를 시공간으로 삼는다. 원작은 남자들에게 억눌리고, 당하기만 했던 여자들이 똘똘 뭉쳐 세파와 맞서는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영화는 여자들의 연대를 그리면서도 정치와 종교를 끌어들여 이야기를 확장했다. 정치 비리와 범죄의 결탁, 정치와 종교의 커넥션 등 묵직한 소재들을 조화롭게 엮어냈다.
※권장지수: ★★★★(★ 5개 만점, ☆은 반개)
출연 배우들의 면면만으로도 포만감이 든다. 오스카 여우조연상 수상 배우인 비올라 데이비스를 필두로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히로인 미셸 로드리게스, 영국의 신성 엘리자베스 데비키가 출연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겟아웃’(2017)으로 눈길을 끈 대니얼 칼루야, 지난해 ‘해리엇’으로 오스카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신시아 에리보도 출연한다. 리엄 니슨과 로버트 듀발은 잠깐 등장하지만 굵직한 이미지를 남긴다. 콜린 패럴까지 가세해 무게감을 더한다.
영화는 반전을 품고 있다. 화들짝 놀랄 정도는 아니지만 제법 재미있다. 차량을 활용한 창의적인 촬영이 볼거리를 제공한다. 맥퀸 감독의 최근작이라는 점만으로도 볼 만할 영화다.
※로튼 토마토 지수: 평론가 91%, 관객 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