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경의선숲길 끝자락에 위치한 ‘세모길’. 이곳은 3년 전만 해도 겨울이면 허연 연탄이 뒹굴었다. 연탄보일러를 돌리는 가정에서 나온 쓰레기였다.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연남동과 같은 연남동이었지만, 딴 세상이었다. 주택재건축 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가 7년 전 해제됐고, 1985년부터 연남동에 들어온 도시가스 파이프는 이곳을 비껴갔다. 주변은 하루가 다르게 변했지만, 이곳은 변할 줄을 몰랐다.
이랬던 세모길은 요즘 몰라보게 달라졌다. 연탄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고, 악취가 진동하던 하수도, 무너질 것 같던 담, 울퉁불퉁하고 오물로 얼룩졌던 보도블록은 모두 깔끔하게 정돈되고 ‘갬성’ 넘치게 바뀌었다. 젊은이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아기자기 멋을 부린 가게들도 곳곳에 문을 열면서 세모길은 3년 만에 ‘새’모길이 됐다.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면’ 단위로 이뤄지던 기존의 구도심 재생 문법에서 벗어났던 게 주효했다. 서울시가 이곳을 대상으로 펼친 ‘골목길 재생사업’이 그 시작이었다. 17일 이곳에서 만난 카페 주인 백승욱(43)씨는 “전에는 경의선숲길을 따라 걷다 이따금 들르는 손님이 대부분이었는데, 사람의 모세혈관과도 같은 골목이 새롭게 단장하자 골목 자체가 목적지인 손님들이 가게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세모 모양의 ‘면’ 단위 개발을 추진하다 좌초한 지역에, 길고 가는 선(골목)을 다듬자 ‘면’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백씨는 “확 달라진 골목 덕분에 골목 깊숙한 곳에서도 용기를 내 문을 여는 가게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2018년 5개에 불과하던 이곳 상점 수는 현재 16곳으로 늘었다.
도시의 슬럼화 방지, 주민의 정주 여건 개선 등의 목적으로 이뤄지는 사업이지만, 짧은 시간에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었던 데에는 관이 아닌 주민이 사업을 주도한 것도 한몫했다. 이른바 상향식 도심 재생이다. 시 관계자는 “사업에 선정된 마을은 1년 동안 주민협의체를 구성하도록 한다”며 “주민들의 요구사항을 수렴, 실행계획을 수립했다”고 말했다. 연남동 세모길의 경우, 골목 거주자와 상인 등 47명이 모인 주민협의체가 일상 속 문제들을 추렸고, 이를 바탕으로 ‘맞춤형 계획’을 제안하면서 주민도 만족스럽고, 젊은이들에게도 매력적인 곳으로 변신했다.
주민 중심의 도심재생은 ‘지속가능한 공동체’ 형성에도 청신호를 켜놓고 있다. 기존의 삶을 통째로 들어내는 재건축∙재개발과 달리, 주민들이 오랜 기간 유지해온 생태를 유지하면서도 보다 나은 삶을 꾀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여상용 세모길 주민협의체 대표는 “우리 의견이 충분히 반영된 재생이기에 모두가 만족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시는 30년 이상 노후한 골목 46곳을 대상으로 재생사업을 시작, 최근 연남동 세모길을 비롯한 관내 골목 10곳에 대한 정비사업을 마쳤다. 각 골목에는 3년간 10억 원이 투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