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냐 정치냐'… 유럽 AZ백신 접종 중단 딜레마

입력
2021.03.18 05:30
전문가 "의심은 시기상조"… 접종 지연에 재확산
"문제없다" 유럽의약품청 공식 면죄부 오매불망

혈전(핏덩이) 유발 가능성이 제기된 아스트라제네카(AZ)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계속 접종해야 하느냐 여부로 유럽국들의 고민이 깊다. 접종 지연에 재확산이 포개지는 설상가상에도 일단 중단을 선택한 나라들이 많지만, 의심은 이르다는 과학적 판단보다 정치적 타격 우려가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현재 유럽에서는 AZ 백신 접종 중단을 선언하는 나라가 속출하고 있다. 16일(현지시간)에도 리투아니아가 가세했다. 접종을 멈춘 채 유럽의약품청(EMA)의 최종 결론을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백신 탓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AZ 백신을 맞은 사람에게서 혈전이 발생한 직전 사례 3건이 보고됐다는 게 보건당국 설명이다.

이미 AZ 백신 일부 또는 전체 접종을 유보한 나라는 20개국이 넘는다. 대부분 유럽국이다. 전체 백신 대상 접종 중단이 처음 이뤄진 것은 11일 덴마크에서였지만, 독일ㆍ프랑스ㆍ이탈리아ㆍ스페인 등 EU 4대 회원국이 15일 한꺼번에 대열에 합류하며 분위기가 완전히 기울었다. AZ 백신이 혈전을 초래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예방 차원에서 조처가 불가피했다는 게 이들의 공통 입장이다.

그러나 여전히 과학은 AZ 편이다. EMA가 이날 AZ 백신 접종이 혈전을 부른다고 볼 만한 징후가 없고 백신 이익이 부작용 위험성보다 크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고, 전문가들 의견 역시 비슷하다. 영국 레딩대 심장ㆍ신진대사 연구소 존 기븐스 소장은 이날 미국 CNN방송에 1,000명당 1,2명이 앓는 혈전증은 비교적 흔한 질환이어서 사례 자체로 백신과 혈전 간 인과성이 입증되지 않는다고, 미 노스캐롤라이나대 백신 클리닉 책임자 데이비드 홀도 AZ 백신이 혈전증을 유발한다고 간주하는 건 아직 시기상조라고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AZ 백신 접종 뒤 돌연 사망한 이탈리아 50대 교사의 사인이 백신과 무관한 심장 질환일 가능성이 크다는 1차 부검 결과가 이날 전해지기도 했다.

이에 정치적 타산이 주요국들의 중단 결정을 좌우했을 거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날 NYT에 따르면 ‘도미노’의 시작은 독일이다. 독일이 총대를 메자 프랑스가 ‘유럽 단일 대오’를 명분으로 중단할 이유가 없다는 기존 입장을 바꿨고, 이탈리아와 스페인도 대세를 벗어나 독자적으로 행동했다 불상사가 벌어졌을 경우 직면할 자국 비난 여론을 의식해 뒤를 따랐다는 것이다. 지난달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AZ가 애초 유럽에 공급하기로 했던 백신 물량을 축소하며 나빠진 영국과 EU 간 감정도 ‘AZ 보이콧’에 얼마간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게 NYT의 추측이다.

하지만 지금 유럽이 계속 그럴 형편은 아니다. 좀체 붙지 않는 접종 속도가 상당 부분 백신 부족 탓인 데다, 영국발(發) 변이 바이러스 때문에 사실상 ‘3차 유행’이 막 시작된 터여서다. 미 CBS방송은 “상대적으로 백신 접종이 뒤처진 유럽 대륙에 AZ 중단은 재앙이라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라고 전했다. 가비노 마치오꼬 이탈리아 피렌체대 교수는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에 “이번 사태가 심은 불신이 AZ 기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래서 오매불망 기다리는 게 “문제없다”는 EMA의 공식 ‘면죄부’다. EMA가 이날 AZ 백신 접종을 중단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입장을 공개하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가 공동 성명으로 “EMA가 긍정적 결론을 내리면 AZ 백신의 접종을 재개할 준비가 돼 있다”며 반색한 게 방증이다. EMA는 18일 AZ 백신의 위험성에 관한 회의를 열고 최종 결론을 도출한다는 계획이다.

권경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