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이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출금) 의혹 사건의 주요 피의자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최근 면담한 사실이 드러났다. 본격 조사에 앞서 피의자가 수사기관 수장을 별도로 만나는 건 대단히 이례적이어서 ‘부적절 만남’ 논란이 일고 있다. 게다가 공수처는 구체적인 조사 내용은 쏙 빼고 면담사실만 기재한 ‘맹탕 수사보고서’를 검찰에 보낸 것으로 확인돼, 당시 만남의 성격을 둘러싼 의혹도 확산될 전망이다.
1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김 처장은 ‘(김학의 사건 중 현직 검사 부분을 검찰에서) 이첩받은 직후, 이성윤 지검장을 만났냐’라는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 질문에 “(이 지검장의) 변호인을 통해 면담 요청이 있어서 (만났다)”라고 답했다. 이어 “공수처 3층에서 변호인과 당사자(이 지검장)를 만났다. 기초조사도 했다”고 밝혔다. ‘(여운국) 공수처 차장도 있었나’라는 추가 질의에도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 지검장은 대검 반부패ㆍ강력부장 시절인 2019년 6월, 수원지검 안양지청에 이 사건과 관련해 ‘수사확대 무마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 의원은 ‘사건 피의자의 면담 신청을 검사장이 다 만나 주느냐’면서 공세를 이어갔다. 김 처장은 “면담 신청을 받아들이는 게 필요했다”고 했지만, 법조계에선 ‘매우 부적절하다’는 반응이 많다. 수도권 검찰청의 한 간부는 “예민한 사건의 피의자를 수사기관의 장이 따로 만났다고 하면 ‘특혜 제공’ 의심이 곧바로 제기될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면담 시점도 논란거리다. 문제의 만남은 수원지검 수사팀이 이성윤 지검장 등 사건을 공수처에 이첩(3일)했다가 재이첩(12일)받은 사이인 지난 7일 이뤄졌다. 공수처가 사건 처리 방향을 정하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김 의원도 “만남 직후에 공수처가 고민을 좀 하다가 사건을 (검찰에) 재이첩했고, ‘검찰은 수사만 하고 기소 여부는 공수처가 판단할 테니 다시 보내라’고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소제기 결정은 우리가 하겠다’는 공수처 결론에 ‘피의자 이성윤’의 의견이 반영됐을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특히 공수처가 검찰로 다시 사건을 넘기면서 사실상 무의미한 수사보고서를 보낸 사실은 이런 의심을 더욱 키우고 있다. 김 처장은 “(이 지검장에게) 진술거부권을 고지한 뒤 시작시간 및 종료시간, 본인 서명도 받았다”면서 수사보고서를 남겼다고 밝힌 뒤, “변호인이 제출한 의견서와 모든 서면을 (재이첩할 때 검찰에) 같이 보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면담 내용은 없었다”고 즉각 반박했다. 수원지검은 이날 “공수처로부터 전날 송부받은 기록엔 이 지검장 변호인 의견서와 면담자, 피면담자, 면담시간만 기재된 수사보고가 편철돼 있을 뿐, 조사내용을 기록한 조서나 면담내용을 기재한 서류는 없었다”고 밝혔다. 공수처는 “수사준칙에 따라 면담 과정을 기록하되, 조서는 작성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해명했지만, 결국 ‘기초조사를 했다’는 김 처장 주장을 입증할 물증은 없다는 걸 자인한 꼴이다.
더구나 공수처는 ‘조서를 작성하지 않은 이유’도 따로 남기지 않았다. 검찰 출신인 한 변호사는 “면담을 ‘기초조사’로 표현한 김 처장 말을 따르면, 핵심 피의자인 이 지검장의 ‘말’을 기록에 남기는 게 맞다”며 “면담 내용이 알려지는 게 부담스러웠던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고 꼬집었다.
김 처장은 또, ‘현직 검사에 대한 기소권 관할’ 논란에 대해서도 종전 입장을 고수했다. ‘검찰에 수사권만 이첩한 것’이라는 기존 주장에 대해 그는 “공소권 행사를 유보한 공수처장의 재량이첩”이라고 설명했다. 공수처법상 ‘이첩 형태’는 공수처장이 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김 처장은 “이첩 대상은 사건인 게 맞다”며 전날 공개된 수원지검 주장을 일부 인정하긴 했다. 하지만 “(공수처가 행사한 이첩은) 단순이첩이 아니라, 향후 공소권 행사를 잠시 보류한 ‘유보부 이첩’인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최종적으론 법원이나 헌법재판소에서 가려질 문제”라며 “검찰의 기소 강행 시, 사법부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공소기각 등 결론이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