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원, 이시전, 박세원, 오영하, 오계영, 김오만, 이계형, 임동야, 임청야, 강재철, 고문익, 장흥수, 양성두”
16일 오전 10시 제주법원 201호 법정 안에는 70여년 전 4·3광풍에 휩쓸려 군경에 잡혀간 후 언제, 어디서 숨졌는지도 모르는 13명의 망자 이름이 차례로 호명됐다. 이들은 1948~1949년 사이 국방경비법 위반 혹은 내란실행 등의 혐의로 적법한 절차없이 군사재판에 회부돼 실형을 선고 받고 제주에서 육지 형무소로 끌려가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4·3행방불명 수형인들이다. 이들 모두 한국전쟁 당시 집단학살되거나 행방불명됐다.
재판부는 이날 70여년 만에 다시 고인이 된 채 법정에 불려나온 피고인들에게 “검찰은 증거가 없어 무죄를 구형했다. 범죄 증명이 없기 때문에 무죄를 선고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어 “오늘 이 판결이 피고인들과 유족들에게 덧씌워진 굴레가 벗겨지고, 나아가 이민 고인이 된 피고인들은 저승에서라도 이제 오른쪽, 왼쪽을 따지지 않고 지슬밥(감자밥)에 마농지(마늘장아찌)뿐인 밥상이라도 마음 편하게 둘러앉아 편안하게 정을 나누길 바란다”고 위로했다.
유족 대표로 나선 박영수(수형인 박세원의 자녀)씨는 “저승에서 온 영혼들을 위해 절을 대신해 목례를 올리겠다. 가슴이 떨려 말이 나오지 않는다. 오늘 무죄 선고는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법정에선 박수와 환호성이 터졌다. 재판은 10여분 만에 끝났지만, 70여년을 기다려 이날 판결을 받아낸 유족들은 법정을 나서서도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재판부는 이날 재심 선고 공판에서 이들 13명을 포함해 4·3 당시 국방경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억울하게 수감됐던 생존 수형인 2명과 행방불명 수형인 333명 등 335명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재판은 직접 선고 결과를 듣기를 바라는 유족들을 배려한 재판부가 21개의 사건으로 나눠 릴레이식으로 진행했다. 재판부가 이날 이례적으로 300명이 넘는 피고인에 대해 선고를 한꺼번에 내린 이유는 재심을 청구한 생존수형인과 행방불명 수형인 유족 대부분이 고령이라 하루라도 빨리 재판을 마무리 짓기 위한 것이다. 실제 유족 중 일부는 재심 과정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이번 재판은 국내에서 열린 단일 사건 재판 중에서 가장 많은 피고인이 법정에 선 특별하고 역사적인 재판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김광우 제주4·3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 회장은 “오늘 같은 봄날이 오길 평생을 기다렸다. 이제서야 4·3행방불명 수형인 영혼들이 눈을 감을 수 있게 됐고, '빨갱이의 자식'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살아온 유족의 한도 한꺼번에 풀리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