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A군에서 지역사랑상품권 가맹점으로 등록된 의류점과 화장품판매점을 운영하는 B씨는 최근 군청에서 과태료 1,000만원을 부과 받았다. 실제 물건을 판매하지 않은 채 지인들이 10% 싸게 구매한 지역상품권으로 약 4,000만원을 결제한 것으로 꾸미고 곧바로 상품권을 환전해 결과적으로 400만원의 차익을 남겼기 때문이다.
특히 군청 직원이 주민 제보를 받아 B씨의 두 가게 주소지를 찾아갔더니 한 곳은 가정집이었다. 상품권 가맹점으로 등록할 때 신청서와 함께 사업자등록증과 업주 통장사본만 제출하면 된다는 맹점을 파고든 것이다. A군청 관계자는 “지인들과 짜고 할인율만큼의 차액을 챙기려고 의도적으로 가맹점으로 등록한 것으로 보인다"며 "해당 점주의 가맹을 취소하고 현재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발행하고 있는 지역사랑상품권이 제도 허점을 악용해 부당이득을 취하려는 부정유통 행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물품을 판매하지 않고 상품권을 받는 이른바 '깡' 행위 등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를 저해하는 행위가 속출하자 급기야 정부가 처음으로 일제단속에 나섰다.
15일 행정안전부는 전국 지자체와 함께 16일부터 31일까지 지역사랑상품권 부정유통 일제단속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행안부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지자체별로 단속하던 사안으로, 정부 차원의 일제 단속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팔을 걷고 나선 건 최근 상품권 부정유통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행안부가 집계한 부정유통 적발 건수는 2018년 13건에서 19년 54건, 지난해 93건으로 급증했고 올해도 지난달 10일 기준 33건에 이른다.
부정행위 유형을 보면 제출 서류만 이상 없으면 가맹점으로 등록할 수 있는 신고제의 허점을 파고든 경우가 많았다. 경남 김해시에서는 대부업체가 상품권 가맹점으로 등록한 사례가 적발됐는데, 알고 보니 업체 이름(김해사랑)을 상품권 명칭(김해사랑상품권)과 유사하게 지어 서류 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기 양주시에서는 '연 매출액 10억원 이하'라는 가맹점 등록 조건을 맞추기 위해 폐업 후 2개 신규업체로 나눠 등록하는 '꼼수'가 등장했다.
또 경기ㆍ충남ㆍ울산에 각각 2곳씩 유령업체를 차려놓고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고등학생 등 1,300여 명을 끌어들인 뒤 지역상품권 47억5,000만원을 허위 결제해 할인액 10%(4억7,500만원)을 챙긴 일당이 최근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이 역시 관할 지자체가 실사 등 확인 절차 없이 서류만 보고 가맹 허가를 내준 결과다.
정부는 이번 단속에서 부정유통 사실이 확인된 가맹점에 부당이득을 환수하고 최대 2,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특히 중대범죄가 의심되는 가맹점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방침이다.
2019년 2조3,000억원이던 지역상품권 발행 규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지역경제 부양책에 힘입어 지난해 9조6,000억원, 올해 15조원으로 급증했고 덩달아 부정유통도 가파르게 증가하는 양상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침체된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각 지자체가 상품권을 적극적으로 확대 발행하고 있고 정부 또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며 “이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상품권 위탁 관리업체와 협업해 이상거래를 실시간으로 탐지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지역상품권의 경제적 효과를 둘러싼 정부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조세재정연구원이 지난해 9월 “지역화폐는 소비자가 원래 쓰려고 한 현금을 대체하는 것에 불과하며, 특정 지역 소비가 늘어나도 국가 전체적으로는 소비 증대 효과가 없다”고 하자 이재명 경기지사와 경기연구원이 반박하기도 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지난해 말 지방행정연구원에 1차 연구 용역을 맡긴 데 이어 올해 2차 연구 용역을 발주할 것”이라며 “지역상품권의 경제적 효과 분석을 위해 여러 연구기관과 다각적인 합동 연구를 수행하고 토론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