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이뤄주는 나무를 만나면 우리는 행복할까?

입력
2021.03.15 16:39
21면
11일 개막한 국립창극단의 '나무, 물고기, 달'


"우리집은 왜 이리 가난할까? 고슬고슬한 쌀밥 배불리 먹어봤으면."(소녀) "어느 날 나 깨달았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진짜 가족, 진짜 행복."(소년) "얼마나 좋을꼬. 슬픈 가지 한가득 꽃을 피울 수 있다면."(사슴나무)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욕망한다. 척박한 땅에 사는 소녀는 굶주림에서 벗어나고 싶고, 소년은 자신이 키우는 108마리 소가 아닌 진정한 가족을 찾는다. 도끼로 베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은 사슴나무는 꼭 한 번만 더 개화를 꿈꾼다. 그래서 이들은 떠난다.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를 찾아, 결핍을 채우기 위해.



국립창극단이 올해 첫 작품으로 지난 11일 개막한 '나무, 물고기, 달'은 수미산이라는 상상의 공간 속 '소원나무'를 찾아가는 주인공들의 여정기다.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눈앞에서 그대로 실현해주는 '소원나무'는 인도의 신화 '칼파 타루'에서 차용됐다. 길 위에서 인물들이 깨달음을 얻고 성장하는 설정은 제주 구전신화 '원천강본풀이'에서 왔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절대반지'를 찾기 위해 역경을 헤쳐나가는 '반지원정대'처럼, '나무, 물고기, 달'의 줄거리만 놓고 보면 소년, 소녀 무리의 험난한 여정이 극의 중심이 될 법하다. 하지만 "여차저차 이러쿵저러쿵 어찌저찌하여" 하는 소리꾼의 해설 몇 마디로 서사는 순식간에 휙휙 전개된다. 주인공들은 어느새 소원나무 앞에 서서,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극의 본격적인 시작은 그 지점부터다.

결국 관객은 원하는 것을 얻은 인간이 만족할 수 있을 것인지, 진정한 행복의 의미는 무엇인지 철학적 질문을 받게 된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 때문에 거처 마련이 쉽지 않은 가정과 아이를 원하지만 난임으로 고생하는 부부, 고된 입시 끝에 좋은 학교에 입학하고 싶은 수험생 등에게 '소원나무'는 특히 심도 깊게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창극에서는 여러 소리꾼이 각자의 역할을 연기하며 극을 끌고 나간다. '나무, 물고기, 달'에서도 이야기꾼 9명이 차례대로 소녀와 소년, 물고기, 순례자, 사슴나무, 달지기로 분해 소리를 주고받는다. 극에 쓰인 소리는 음악감독을 맡은 소리꾼 이자람이 빚었다. 작창된 노래들은 기본적으로 각 장면과 인물들의 색깔에 어울리도록 창작됐지만, "이 정도 선까지 넘어보면 어떨까?" 하는 이 감독의 음악적 시도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순간적인 조바뀜이나, 기존 조성에는 없는 화음의 등장이 대표적인데, 긴장감을 유발한다.

연극연출가 배요섭이 제작에 참여했다. 보름달을 닮은 동그란 무대와 조명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처음엔 새하얀 한복을 입은 소리꾼들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며 남사당을 닮은 의상으로 갈아입는 과정이 해학적이다. 새하얀 부채춤과 탈춤에서 비롯된 무용은 우리 고유의 우아함을 연출한다. 객석 웃음을 자극하는 순례자와 물고기의 익살스러운 연기는 덤이다. 21일까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하늘극장.

장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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