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량 부족한데 안전성까지… 유럽 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악몽

입력
2021.03.14 20:30
16면
혈전 발생·사망에 10개국 접종 일부 중단
미국 AZ백신 수출 거부에 물량 부족 우려
재확산 조짐에 백신 민족주의 번질 가능성

유럽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악몽이 또 불거졌다. 논란 한 가운데는 이번에도 다국적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이 있다. 해당 백신을 맞은 뒤 숨지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유럽 각국이 사용을 일시 중단한데다, 수급마저 어려움을 겪으며 잡음이 이어지는 탓이다. 코로나19 재확산 조짐까지 거세지면서 상황은 한층 복잡해지고 있다.

13일(현지시간) 외신을 종합하면 최근 유럽 국가들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일부 제조단위(batchㆍ1회 생산분) 또는 전체 물량 접종 중단에 나섰다. 덴마크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불가리아는 접종을 잠정 중단했고, 이탈리아ㆍ오스트리아는 사망자가 접종한 특정 생산분의 사용을 멈췄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룩셈부르크 역시 오스트리아와 같은 생산분 접종을 중지했다. 접종 시행을 미룬 유럽 나라는 줄잡아 10개국에 이른다.

원인은 ‘혈전’ 부작용이다. 오스트리아, 덴마크, 이탈리아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은 이들 중 일부에서 혈전(혈관 속에서 피가 굳어진 덩어리)이 생겼고, 사망 사례까지 나오자 예방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날 노르웨이에서도 해당 백신을 접종한 의료진 3명이 비슷한 증상을 보였는데 상태가 위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업체 측은 백신이 혈전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증거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보고된 종류의 발병 규모가 백신 미접종자에게서 자연 발생했을 가능성보다 크지 않다”는 설명을 내놨다. 유럽 보건당국과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사용을 중단할 이유가 없다고 보고 있다. 백신과 혈전 사이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았고, 백신 접종 이익이 위험성보다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유럽의약품청(EMA)은 “EU에서 백신을 맞은 500만명 중 혈전 발생사례는 30건으로 자연 발생 빈도보다 낮다”고 일축했다.

설상가상으로 공급 문제도 겹쳤다. 미국이 자국 생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물량을 당분간 유럽연합(EU)에 수출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다. 가뜩이나 연초부터 계속되는 물량 부족으로 접종 계획에 차질을 빚고 있는 EU 입장에선 실타래가 풀리기는커녕 계속 꼬여만 가는 형국이다. 로이터통신은 “미국의 이번 메시지가 EU회원국들의 백신 접종 계획을 한층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고 전했다.

최근 유럽 내 코로나19가 재확산할 가능성도 커져 백신 수급에 차질이 생기면 ‘백신 이기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 우려도 나온다. 전날 이탈리아 정부는 고위험지역(레드존) 문턱을 낮추는 고강도 대책을 마련했다. 직접 영향을 받는 시민만 전체 인구(6,000만명)의 절반에 달한다. 또 독일 보건당국이 “3차 대유행이 시작됐다”고 공언할 만큼 유럽 내 코로나19 상황은 악화일로다. 블룸버그통신은 “백신 부족분을 다른 나라에서 끌어와 보완하려는 (유럽의) 노력은 각국 정부가 자체 생산 백신을 보호하면서 벽에 부딪혔다”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유럽에서 혈전과 민족주의 심화로 악몽에 빠졌다”고 평가했다.

허경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