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원장 무죄 유지’에 법정 눈물바다… "국가폭력 인정" 평가도

입력
2021.03.11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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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비상상고 기각' 주문에 법정 아수라장
일부 피해자 "국가가 우리를 또 버렸다" 울먹
생존자모임 대표 "존엄성 침해 사건 규정 중요"
진실규명 위한 '2기 진실화해위' 책임 더 커져

“국가가 우리를 또 버렸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자행된 대표적 인권유린 사례인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가해자 고(故) 박인근 원장의 특수감금 혐의 무죄가 32년 전과 똑같이 유지된 11일, 피해 당사자들은 재판부에게 원통함과 억울함을 쏟아냈다. 다만 대법원의 비상상고 기각과는 별개로, 판결 내용에서 이 사건에 대한 국가책임을 인정한 점 등은 의미 있다는 평가도 함께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이날 원장 박씨의 비상상고심에서 검찰총장의 청구를 기각했다. 지난 1989년 박씨의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이 확정된 지 32년 만이다. 재판부는 이날 형제복지원 사건을 헌법상 최고가치인 ‘인간 존엄성’을 침해한, 대규모 인권유린 사건으로 규정하면서도 법리적인 이유로 무죄 판결을 취소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박씨는 1975~87년 형제복지원을 운영하며 원생들을 강제노역시키며 불법감금한 혐의로 기소됐었다.

재판장이 ‘기각’ 주문을 읽자, 이내 대법원 법정은 아수라장이 됐다. 한 피해자는 일어나서 손을 들며 “질문이 있습니다 판사님!”이라고 계속 외치다가, 법정 경위에게 제지를 당했다. 한 여성은 법정 밖에 주저앉아 “국가가 우리를 또 버렸다”면서 울먹거렸고, “대법관이라는 사람들이 말 한 마디도 들어주지 않느냐”며 실망감을 내비친 이도 있었다. 이후에도 한동안 피해자들은 흥분과 원통함을 감추지 못하고, 대법원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비상상고 기각 결정에 대한 안타까움과는 별개로, 대법원 판결의 의미를 높게 평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피해자들을 대리한 박준영 변호사는 “너무 아쉽고 안타깝다”면서도 “오늘 대법원은 국가의 조직적 불법행위를 인정했으며, 피해자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국가로부터 충분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고 언급했다. 이어 “대법원의 이번 판단 의미를 보면, (향후) 피해자들의 국가배상청구 사건에 도움이 됐으면 됐지, 장애가 되진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해생존자 모임 한종선 대표도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대법원이 형제복지원 사건을 ‘인간의 존엄성 침해 사건’으로 규정한 게 중요하다”며 “사회적 논의를 통해 진실 규명을 해야 할 국가폭력이라는 점을 대법원도 인정해 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준민 형제복지원 대책위원회 사무국장 역시 “(판결 선고의) 순간 안타깝고 분노가 일었을지 모른다”면서도 “중차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란 본질을 대법원이 정확히 이해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날 대법원의 비상상고 기각으로,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실규명과 피해 회복 등을 위한 기본 토대 마련의 책무는 이제 지난해 12월 출범한 ‘2기 진실화해과거사정리위원회’의 손에 넘어가게 됐다. 대법원도 판결문에서 2기 진화위를 언급하면서 “뒤늦게나마, 피해자들의 아픔이 치유돼 사회 통합이 실현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2기 진화위는 총 9명의 위원들 가운데 한동안 공석이었던 야당 추천 1인이 조만간 공식 임명되면, 다음달 '1호 접수 사건'인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본격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최나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