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현지시간) 쿠팡의 뉴욕 증시 상장은 단지 쿠팡 차원의 '대박'을 넘어 국내 유통업계의 일대 격변기를 예고하고 있다. 쿠팡은 기업공개(IPO)로 마련한 5조원대 실탄으로 한층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칠 전망이다.
시장에선 벌써부터 "네이버가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게 심상치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통 유통업체부터 정보기술(IT) 기업까지 합종연횡을 통해 쿠팡에 없는 무기로 쇼핑과 배송의 판을 키우는 역대급 투자 전쟁이 펼쳐질 조짐이다.
쿠팡은 이날 주당 공모가격을 35달러로 최종 결정했다. 애초보다 상향한 공모 희망가(32~34달러)보다도 더 높은 금액이다. 현지 로드쇼(투자설명회)에서 투자자들의 고평가에 자신감을 얻은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공모가로만 상장해도 쿠팡의 기업가치는 630억달러(약 71조8,000억원)까지 치솟는다.
이는 미국 증시에 상장한 아시아 기업 중 알리바바 이후 최대 규모 공모다. 국내 상장사와 견줘도, 삼성전자(시가총액 약 489조원), SK하이닉스(100조원)에 이은 3위 수준이다. 계획보다 1,000만주 늘어난 1억3,000만주로 쿠팡이 새로 조달할 자금 규모는 45억5,000만달러(약 5조2,000억원)에 달한다.
쿠팡은 5조원 넘는 실탄을 더 촘촘한 물류 네트워크에 쓸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5조원이면 인구 밀집도 높은 곳에 약 10만㎡(3만평) 이상 규모 A급 물류센터 15개 이상을 건설할 자금으로 본다.
현재 전국에 170여 개 물류센터를 두고, 탄탄한 수도권 로켓 배송(익일 배송)망을 갖춘 쿠팡은 앞으로 기존 센터 자동화와 지방 센터 추가 건립에 힘쓸 예정이다. 2025년까지 전 국민을 쿠팡 물류센터 반경 10㎞ 내에 포함시키겠다는 게 목표다.
물류센터가 추가되면 직매입해 쌓아두는 물건이 더 다양해진다는 뜻이다. 그만큼 로켓 배송 물량을 늘릴 수 있게 된다. 쿠팡은 저렴한 대량 생산 공산품에 강하지만 취향을 많이 타는 패션, 뷰티, 고가 가전제품 등은 상대적으로 열위다. 감성 소비를 중시하는 2030세대는 쿠팡보다 네이버 쇼핑을 더 많이 한다.
플랫폼 지배력, 상품 다양성 등은 압도적이지만 배송, 신선식품 등이 약점인 네이버의 우군으로 최근 CJ와 신세계가 합류한 배경이다. CJ그룹은 1위 택배사 CJ대한통운을 가지고 있고 신세계그룹의 SSG닷컴은 장보기 특화 전략에 성공한 온라인몰이다. 네이버와 6,000억원 규모 주식을 교환하며 혈맹을 맺은 CJ에 이어, 신세계도 조만간 지분 교환이 예상된다.
이베이코리아가 매력적 매물로 떠오르는 것도 쿠팡과는 다른 수익 구조 때문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이베이는 주문 중개 수수료와 광고비를 버는 오픈마켓 모델이 잘 안착해 국내 e커머스 중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 중이다. 충성도 높은 유료회원도 300만명이다. 초반엔 5조원의 매각 희망가가 "너무 비싸다"는 평이 나왔지만 카카오, 신세계, 롯데 등 10여 곳이 투자설명서를 받아 간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쿠팡은 기본적으로 물건을 싸게 팔고 맨땅에 물류센터를 짓는 데다 직매입 재고 관리 비용도 커 적자가 난다"며 "이베이를 품으면 3위로 올라서 1, 2위인 네이버, 쿠팡과의 격차도 단숨에 좁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형마트 업체들은 기존 오프라인 매장의 물류 거점화 등에 기대를 건다. 미국 월마트는 2016년 쇼핑몰 제트닷컴 인수 후 매장 픽업, 드라이브스루 등 온·오프라인 시너지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쿠팡이 벤치마킹하는 아마존도 최근 오프라인 매장에 꾸준히 투자하고 있지만, 아직 쿠팡은 온라인 채널에만 의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상품 다각화, 인공지능(AI) 기반 물류 효율성 제고 등에 투자를 늘리면서 각 사의 강점을 결합하는 '연합군 전략'이 지속될 것이라고 본다. 이지영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쿠팡의 공습으로 앞으로는 유통기업의 독자 생존이 어렵다"며 "시장의 45%를 차지하는 기타 e커머스 사업자들이 대형 플랫폼에 편입되는 결과도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