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이 말하지 못한 것들

입력
2021.03.12 04:30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상반된 논리를 동시에 전개할 때가 있다. 기술발달로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거란 걱정과 출산율 급감이 노동력‧경제력 감소로 이어질 거란 걱정을 함께하는 일 같은 것 말이다. 그러니 작금의 저출산을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출산 축하금 200만원’ 같은 지원을 대책이라고 내놓지 말고 차라리 저출산에 맞춰 산업구조 바꾸고 1인 가구 대책 만드는 데에 골몰해보자고 몇 달 전 칼럼에 썼다.

그 글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세수가 펑크가 나서 사회보험이 고갈되고 있는데 (중략) 이렇게 무책임하게 글 써도 되나?’ 그 분께 답한다. ‘세수 조정과 예산 재편이 애 낳으라 등떠미는 것보다 국정 본질에 가까운 일입니다.’ 우리나라 행정시스템의 문제는, 대통령이나 부처 장관이 고민하면 풀 일을 ‘출산 축하금 200만원’ 같은 대책으로 온 국민이 걱정하게 만드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페미니즘당 창당모임,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이 최근 대통령께 이런 주문을 했다. ‘출생률 말고 자살률을 보십시오!’ 3‧8 세계 여성의 날에 기자회견을 연 이들은 “저출산과 비혼은 문제가 아니라 인과관계를 포함한 현상”이라며 “무엇을 문제로 볼 것인가부터 (대통령이 여성들과) 부딪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 말처럼 자살률을 살펴보면 출산율(출생률)로 설명되지 않는 문제가 보인다. 우선 연령과 자살률이 비례한다. 2019년 인구 10만 명당 자살 사망자 수는 10대 5.9명, 20대 19.2명에서 70대 46.2명, 80대 이상 67.4명으로 연령이 많을수록 는다. 65세 이상 10만 명당 자살자 수는 53.3명(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압도적 1위로 한국의 자살률을 '끌어올린' 주 요인으로 꼽힌다.

또 하나 특이한 건 여성 자살률로 2002년 이후 역시 OECD 압도적 1위를 유지하며 꾸준히 ‘연구대상’이 됐다. 십수년째 나온 관련 보고서가 무색하게 지난해 상반기 20대 여성 자살사망자 수는 전년 대비 43% 증가했다. 전 세대를 통틀어 가장 큰 증가폭이다.

우리나라의 높은 자살률을 두고 어느 보수 논객은 “(우리 국민이) 우울증 치료를 덜 받기 때문”이란 해석을 내놨는데, 문제는 자살률이 상대적으로 더 높은 노인과 여성은 가난하고 바빠 우울증 상담할 여유가 없다는 사실이다. 2018년 노인빈곤율은 43.8%, 2명 중 1명이 중위소득의 절반 이하를 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3~11월 20∼50대 여성노동자 3,007명을 설문한 결과 5명 중 1명, 고졸 이하 2명 중 1명이 코로나19 이후 직장을 그만뒀고 퇴직 비중이 높은 분야일수록 실업급여, 고용유지지원금 수혜율이 낮았다.

사회학자 장경섭은 한국을 서구 자유주의 이념을 가족 단위로 실현하는 '가족 자유주의 국가'로 규정했다. ‘선성장 후복지’ 정책으로 일단 가족에게 돌봄 의무를 전가하고 경제가 발전하면 나라가 책임질 것처럼 세금을 거뒀지만, 책임진 정권은 없고 외환위기 같은 변화의 후유증을 가족이 다 떠맡았다는 설명이다. 그 결과가 과거 돌봄 주체 노인, 현재 돌봄 주체 여성의 압도적 자살률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니 대통령께 요청한다. 미래 세수(출산율) 기대 말고, 신음하는 민심을 보십시오. 소득 3만 달러 시대 여느 나라와는 다른 세대별 자살률을 보십시오.


이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