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장애가 있는 아홉 살 남자아이가 한겨울이던 지난해 1월 찬물을 채운 욕조 안에서 벌을 서다가 2시간 만에 저체온증으로 숨졌다. 두 달 뒤 빨래방망이로 두들겨 맞은 열 살 남아가 외상성 쇼크로 사망했다. 6월엔 또 다른 아홉 살 소년이 단지 거짓말을 했다고 여행용 가방에 7시간 넘게 갇혀 질식사했다. 모두 부모의 학대로 아이들이 때 이른 죽음을 맞은 사례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8월 내놓은 '2019년 아동학대 주요통계'에 따르면 2019년 아동학대로 숨진 아동은 42명. 전년(28명)보다 50% 늘어났고 2015년(16명)과 비교하면 2.6배 급증했다. 요즘 들어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 빈발하고 있다는 경각심에 근거가 없지 않은 셈이다.
어쩌다 삶의 보금자리에서 이런 비극이 벌어지는 걸까. 왜 어떤 부모는 성심껏 보호해야 할 어린 자녀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걸까. 본보는 17일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살인 또는 아동학대치사로 유죄 선고를 받은 아동 사망 사건 가운데 언론의 관심을 받은 10개 주요 사건의 판결문을 입수해 분석했다.
사건 속 부모들은 하나같이 별스럽지 않은 이유로 아이에게 손을 댔다. 경기 여주시 자택에서 독감이 낫지 않은 의붓아들(당시 9세·지적장애 3급)을 차가운 욕조에 방치해 숨지게 한 친모 A(31)씨. 범행 동기는 '동생을 깨우려 하고 시끄럽게 굴어 훈육하기 위해서'였다. 대전 유성구 집에서 친모 B(38)씨가 아들을 매질해 죽음으로 내몬 이유는 '낮잠을 자지 말라'는 말을 어겼기 때문이었다. 범행을 종용한 B씨의 남자친구(38)도 "생활습관을 잡아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재작년 9월 인천 미추홀구 집에서 의붓아들을 목검으로 100차례 넘게 때리고 몸이 활처럼 휘도록 손발을 뒤로 묶어 방치해 숨지게 한 계부 D(28)씨는 다섯 살 아들이 자신을 무시해서 그랬다고 말했다. 그해 초 경기 광주시 자택에서 여아를 두개골 골절로 뇌사 상태에 빠뜨렸다가 한 달 만에 숨지게 한 사람은 아이 친부의 동거녀 E(35)씨였는데, 그는 겨우 세 살짜리인 아이가 장난감을 정리하지 않거나 애완견을 괴롭혔다고 막대기와 손으로 마구 때렸다.
지난해 2월 울산 집에서 다섯 살 의붓아들을 대리석 바닥에 밀어 넘어뜨려 머리뼈 골절로 숨지게 한 계부(40)와 재작년 10월 대전의 모텔에서 생후 2개월 아들을 휴대폰 등으로 때려 숨지게 한 친부(25)도 '버릇이 없다'거나 '달래줘도 운다'는 이유로 범행했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아동학대 행위자는 '훈육을 위한 것'이라고 변명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나약한 존재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어린 생명을 꺾는 잔혹한 폭력이 우발적·충동적으로 행사되기보다는 점차 강도를 높이며 지속적으로 자행된다는 점 역시 아동학대 사망 사건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부모에 의한 아동학대는 그 특성상 가정이라는 내밀한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다 보니 가해자의 폭력 성향이 전혀 견제받지 않고 자가발전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찬물 학대'를 한 A씨는 의붓아들이 네 살 때부터 손찌검을 했다. 학대 신고로 2년 가까이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맡겨졌던 아들을 초등학교 진학을 이유로 집으로 데려온 뒤 학대는 더 가혹해졌다. 남자친구와 함께 아들을 때려 숨지게 한 B씨의 학대는 플라스틱 자로 손바닥을 때리는 것에서 시작됐다. 점차 학대의 횟수와 강도가 높아졌고 아이는 4개월 만에 혼자서는 거동을 못 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목검 폭행'을 한 D씨 역시 자신의 학대로 인해 2년 넘게 보육원에 의탁하던 의붓아들을 집에 데리고 온 지 10여 일째부터 다시 때리기 시작했고 아이는 결국 한 달 만에 살해됐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체벌로 시작한 학대가 '폭력의 상승작용'에 따라 사망까지 이어진 것"이라며 "학대 행위자의 매는 점점 세지고 아이의 맷집도 따라서 강해지다가 어느 순간 사망하고 만다"고 지적했다.
물론 신체적으로 취약한 영·유아에 대한 학대가 죽음을 초래할 공산이 크다. 2019년 학대로 사망한 아동 42명 가운데 19명(45.2%)이 만 1세 미만 영아였다. 전체 학대 피해 아동에서 만 1세 미만이 차지하는 비율이 2% 수준임을 감안하면 영·유아 학대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알 수 있다. 본보가 분석한 10개 사례에서 숨진 아동 11명 중 8명이 5세 이하였고 그중 5명은 돌이 채 지나지 않은 영아였다.
학대받는 아동의 형제자매도 피해를 벗어날 수 없었다. 재작년 4월 경기 남양주시 자택에 생후 3개월 딸을 방치해 숨지게 한 친부(30)는 세 살 아들도 몸에서 냄새가 날 정도로 씻기지 않는 등 방임했다. B씨와 그의 남자친구는 딸(당시 7세)이 보는 앞에서 오빠를 폭행했고 딸에게 오빠의 뺨을 여러 차례 때리라고 시키기도 했다. 아들을 가방에 가둬 숨지게 한 C씨는 아이의 동생을 '전설의 매'라고 이름 붙인 나무 막대기로 때렸다. D씨에게 목검을 건네는 등 범행을 방조한 친모(25)는 당시 2, 3세에 불과했던 다른 두 아들에게 형이 폭행당하는 장면을 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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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서도 생후 16개월 된 정인양을 입양한 뒤 학대해 숨지게 한 사건을 비롯해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녀를 양육할 심리적·경제적 여건을 갖추지 못한 '준비 안 된 부모'가 아동학대의 늪에 쉽게 빠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공 대표는 "2019년 기준 학대 행위자의 52.9%가 10, 20대였는데 상당수가 10대에 출산을 하는 등 아이를 기를 만한 준비가 덜 된 부모였다"며 "육아보다는 밖에서 놀고 싶고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가 쌓여 학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너무 이른 나이 또는 미혼 상태에서의 출산, 원룸과 모텔을 전전하는 주거 불안정, 빈곤, 범죄경력 등 양육자의 다양한 위험요인이 중첩된 점이 아동학대 사망 사건의 공통적 특징"이라고 말했다. 실제 '찬물 학대'를 한 A씨는 재판 과정에서 육아 스트레스와 어려운 가정형편, 남편과의 불화를 호소했다. 재작년 생후 7개월 된 딸을 인천 부평구 집에 닷새간 방치해 숨지게 한 20대 초반 부부는 과음을 했다는 이유로 딸 장례식에도 불참하는 미숙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자녀를 올바로 양육할 수 있도록 돕는 '부모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 교수는 "아이를 학대해 죽음에 이르게 하고도 '훈육했다'고 강변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데, 체벌을 당연히 여기며 '사랑의 매'로 칭송하던 시대는 지났다"며 "아이를 절대 때려서는 안 되며 아이를 혼자 두는 행위가 얼마나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부모 대상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