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시흥에도 기획부동산 활개 확인... "정부 덕에 사기가 대박 된 셈"

입력
2021.03.10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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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이 불거진 광명·시흥 지구에도 과거 다수의 '기획부동산'이 활동했던 흔적이 확인됐다.

기획부동산은 통상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내 임야 등을 저가로 산 뒤, '지분 쪼개기' 방식으로 비싸게 되파는 부동산 법인을 일컫는데, 단기간 많은 매수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추후 개발 가능성이 높다"는 식의 허위 정보를 퍼뜨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기획부동산이 활개를 친 지 불과 1년 만에, 광명·시흥 지구는 실제 개발이 이뤄졌다. 정부가 이곳을 성급하게 공공택지로 지정하면서 사기꾼의 광고를 현실로 만들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10일 한국일보 취재 결과, 광명·시흥 지구로 지정된 경기 광명시 가학동에서 지난해 기획부동산이 지분 쪼개기로 되판 땅 여러 필지가 확인됐다.

기획부동산이 노린 곳은 그린벨트다. 개발 가능성이 낮아 싸게 매수할 수 있고, 그만큼 매수자에게 "투자 대비 수익이 클 것"이라고 속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일보가 확인한 광명·시흥 지구 내 기획부동산 개입 토지는 모두 산 복판에 있는 그린벨트였다.

이 중 기획부동산으로부터 1만2,462㎡ 규모 가학동 그린벨트 땅을 매입한 소유자는 현재 모두 72명이다. 등기를 조사한 결과, 지난해 4월부터 3개월간 지분 쪼개기로 땅을 산 토지주는 69명이었다. 나머지는 지분을 미처 다 팔지 못한 기획부동산 소유다.


수익도 상당하다. 가학동 그린벨트의 경우, 지난해 4월 기획부동산 6곳이 총 4억2,000여만원에 땅을 샀다. 이후 이들은 지난해 7월까지 대부분 토지를 14억6,200여만원에 되팔았다. 3개월 새 필지 한 곳에서만 10억원 이상을 벌어들인 것이다. 이들은 같은 시기 이곳 외에도 그린벨트 한두 필지를 더 사들였다. 역시 상당한 수익을 거뒀을 것으로 보인다.

현지에서는 기획부동산 문제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고 전한다. 가학동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A씨는 "예전부터 광명·시흥 지구 안팎 임야에 기획부동산이 많이 들어왔다"며 "서울 등에 사무실을 차린 뒤 투자자를 모집하는 방식이라 지역 주민은 별로 없고 외지인이 대다수"라고 귀띔했다.

사들인 토지의 개발 가능성이 높다면 기획부동산 입장에선 굳이 지분을 쪼개 되팔 이유가 없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광명·시흥 지구를 다급하게 공공택지로 지정하면서, 기획부동산의 '먹튀' 행각이 투자자에게 진짜 수익을 안겨준 '신의 한수'로 뒤바뀐 셈이다.

국토교통부는 앞으로 공공택지 지정 전 투기 여부를 충분히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변창흠 장관은 9일 "앞으로 사전에 공직자 등의 거래내역 등을 조사한 다음, 이상 없는 곳만 (공공택지) 대상으로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기획부동산과 LH 직원 투기 모두 거래 자체는 합법적으로 이뤄졌기에, 실제 정부가 검증할 방법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진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