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확정 수술 부작용 고통, 홀로 감내... 병원 "치료해주는 게 어디냐"

입력
2021.03.2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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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의사 조차 트랜스젠더 응급조치 못해
열악한 환경서 수술, 부작용에 삶의 질 추락

<1>병원이 공포인 사람들



20대인 트랜스젠더 남성 윤찬형(가명)씨는 4년 전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실려갔다. 국내의 한 개인병원에서 성확정(전환)수술을 받은 지 3주가 지난 밤이었다. 수술 부위가 아물길 기다리며 착용하고 있던 소변줄이 갑자기 막히면서 소변이 나오지 않았다.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쥐어 짜는 듯한 고통으로 방광이 터질 듯한 상황에서, 응급실 의사는 말했다. "이런 상황에 대한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해 어떻게 처치해야 할지 모릅니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와 통화가 안 되면 치료를 할 수 없어요."

국민의 생명과 연관된 대학병원 응급실 담당 의사는 트랜스젠더의 소변줄 하나도 교정하지 못했다. 배운 적이 없고, 관련 의료 지침도 없기 때문. 집도의가 전화를 받고, 응급실 의사가 집도의의 조언을 받아 소변줄을 조정하기까지 두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당시 방광이 어찌나 부풀었던지 소변줄과 이어진 피부 조직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찢어져 있었다. 그날 결국 그 집도의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찬형씨의 사례는 한국의 트랜스젠더가 처한 의료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민 생명이 달린 보건 영역이지만, 성확정 과정과 관련해 이들이 믿고 안전하게 이용할 병원은 거의 없다.

성확정 수술. 자신의 생물학적 성별에 불쾌감과 위화감을 겪는 이들이 고민을 거듭하다 용기를 내서 받는 수술이다. '성전환'은 생물학적 기준만을 기반으로 하는 용어여서 '성확정'을 더 정확한 용어로 본다. 자신이 생각하는 몸과 마음을 일치시키고 본래 정체성 찾기 위한 것이며, 그러한 의료 과정은 '의료 트랜지션'이라고 부른다. 보통 성확정 수술과 호르몬 치료가 해당된다.

국내에서는 공공병원에서도 성확정수술 관련 진료를 받기 어렵고, 의과대학에서 이를 가르치는 교과 과목도 거의 없다. 관련 학회나 믿을 만한 의료 지침도 없다. 한밤 중 문제가 생겨 대형병원 응급실에 가도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이유다.

혐오와 차별에 떠밀려 국가마저 저버린 곳엔 중소규모의 병원 몇 군데를 중심으로 불안정한 의료 환경이 조성된다. 트랜스젠더들이 통사정을 해가며 병원에 수술을 ‘부탁’하고, 의사의 선의에 따라 처분이 결정된다. 운이 좋으면 안전하고 친절하게 진료를 받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가장 잘 알려진 병원에서조차 반말과 모욕을 듣고, 하루 10만원을 주고 입원을 하고도 편의점에서 파는 인스턴트 죽을 대접 받을 정도다.

한국일보는 의료 트랜지션을 한 트랜스젠더들을 만나 이들의 험난한 여정을 들었다. 의료 정보를 찾고, 수술대에 오르고, 예후 관리를 받는 모든 순간에 건강권은 없었다. 이들은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도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게 되레 혐오로 돌아올까 우려된다. 병원도 몇 군데 안 돼 신분이 노출되면 다신 병원을 이용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취약한 수술 환경, 극심한 부작용으로 이어져

찬형씨도 애초 극심한 통증과 함께 방광이 딱딱해질 정도로 부푼 위급 상황에서도 일반 병원을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도 일반병원의 무지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 서너시간 동안 집도의와 연락이 닿지 않자, 찬형씨의 어머니가 “더 이상은 못 기다린다”며 119구급대를 불렀다. 4년이 지났지만 찬형씨의 어머니는 당시를 떠올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모든 것이 지나간 줄 알았으나, 이날 이후 찬형씨는 소변을 눌 때마다 통증에 시달렸다. 수술을 했던 병원에서는 정확한 원인을 진단하지 못한 채 항생제만 처방했다. 두 달 뒤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그가 한 가정의학과에 방문한 뒤에서야 소변검사 등을 받고 방광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찬형씨가 복용하던 항생제는 방광염을 일으킨 균과 관련이 없는 것이었다.

부작용 안내도 받지 못한 채 수술대에 오른 뒤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다. 부작용을 겪으면서도 시비를 가려줄 비교군이나 지침 등이 없어 문제제기도 못 한 채 속만 썩인다.

트랜스젠더 남성 서요한(가명)씨는 2017년 한 개인병원에서 성기재건수술을 받은 후 4년째 심각한 염증에 시달리고 있다. 팔뚝살이나 허벅지살 등을 이용해 남성 성기를 만드는 수술인데, 요도를 만들어 기본적인 배뇨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한다. 대형병원 비뇨기과에서도 교통사고 등으로 성기를 잃은 남성에게 유사한 수술을 한다. 그러나 트랜스젠더를 대상으로 이 수술을 하는 비뇨기과는 극히 드물다.

요한씨의 경우, 1차 수술이 끝난 후에야 요도에 직경 0.5mm, 길이 20cm 크기의 실리콘 관(카테터)을 끼우도록 안내를 받았다고 한다. 배뇨를 위해 형성해둔 요도가 막힐 수 있으니 1년간 카테터를 끼워 협착을 막아 두라는 게 병원의 설명이었다.

요한씨는 “그 긴 관을 1년이나 요도에 꽂아놓고 생활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수술이 끝난 뒤에야 해주는 법이 어디있냐”며 “이런 사후관리 방식을 들어본 적도 없고, 카테터가 무엇인지, 어떻게 구매하고 사용해야 하는지도 몰랐다”고 당혹스러워했다.

이후 매일이 악몽의 연속이었다. “점차 나아질 것”이라던 협착은 수개월이 지나도 좋아지지 않았다. 소변을 누려면 요도를 막고 있는 카테터를 잠시 빼야 했는데, 관리 기술이 없다 보니 다시 넣을 때마다 피가 났다. 카테터를 넣으며 긁히거나 잘못 찔러 넣어 살이 패인 탓인지, 최근까지도 사타구니 인근까지 염증이 퍼져 나오기도 한다.

최악은 요도가 완전히 막히는 경우였다. 수술 후 1년쯤 지난 뒤 요한씨가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하냐”며 항의하자 병원은 “슬슬 한시간 정도는 빼도 된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 시간을 빼자 카테터가 다시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요도가 막혔다. 놀란 요한씨가 병원에 전화를 했지만 별다른 조치 없이 “쇠봉(딜레이터)으로 요도를 뚫으라”는 답을 들었다. 요한씨는 “극심한 고통과 함께 많은 양의 혈액이 쏟아져 나왔다”고 말했다.

이 수술의 협착률은 최소 4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서, 일반 대형 병원에서는 수술 후 3개월 뒤 내시경이나 요도 조영술을 통해 협착 여부를 확인한다. 그러나 이 병원은 이런 검사를 위한 장비를 갖추지 않았다.

요한씨는 "병원에 협착이 되고 있는 건지 아닌지만 확인해달라고 요청해도 '몰라도 괜찮다'며 말을 돌리기 일쑤였다"며 "결국 초음파 검사만 해줬다"고 말했다. 비뇨기과 전문의에 따르면, 초음파 검사는 협착 여부 확인과 관련이 없다. 한국일보 취재 전까지 요한씨는 이런 정보도, 일반적인 대처방법도 접하지 못했다. 요한씨는 여전히 카테터를 착용한 채 생활한다.

해당 병원은 "카테터를 끼우도록 한 것은 수술이 완성된 상태가 아니어서 더 나은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라며 "대안을 고민한 끝에 2019년부터 카테터를 사용하지 않는 방법으로 수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환자들에게 '카테터를 끼워야 한다'는 사실을 미리 안내해주진 않았지만 일반적인 부작용에 대해서는 설명을 했다"며 "포괄적인 의미에서 부작용 가능성을 고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어 "카테터 부작용 피해 환자에게 수술비를 일절 받지 않은 채 마취비·입원비만 받고 재수술을 해주겠다"고 말했다.

각자도생 내몰려… 호르몬 자가처방까지

올해 46세인 트랜스젠더 남성 이성준(가명)씨는 2015년부터 1년 넘게 병원 처방 없이 호르몬 주사를 자가 처방했다. 한국에 호르몬 치료를 해주는 것으로 알려진 트랜스젠더 친화적인 병원은 수도권에 몰려 있는데, 지방에 거주하는 성준씨로서는 이용하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성준씨는 “일반 가정의학과 등을 찾아가도 ‘왜 남자가 되려 하느냐’는 등 조롱 투의 발언을 듣기 일쑤였다”며 “태국에서 호르몬제를 처방 받은 지인을 통해 1년어치를 구매해 사용했다”고 말했다.

호르몬 치료는 투여량이 적절히 관리되지 않으면 유방암ㆍ자궁암ㆍ적혈구증다증 등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인별로 적정 투여량이 다르기 때문에 트랜스젠더 친화적인 병원에서는 정기적인 혈액검사를 통해 신체 변화의 속도를 맞춘다고 한다. 성준씨는 “별다른 조치 없이 인터넷을 보고 투여했다”고 말했다.

이는 성준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인권위에 따르면, 호르몬 치료를 받은 국내 트랜스젠더 278명 중 94명(33.8%)이 ‘병원 처방 없이 호르몬제를 구입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트랜스젠더 여성 김미지(가명ㆍ35)씨는 "호르몬은 한달 3,4만원 정도로 비싸지는 않지만 맞을 곳이 없다"며 "코로나19 사태로 만약 서울로 (호르몬 맞으러) 갔다가 감염돼서 동선 공개 되면 주변에 커밍아웃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많이 떨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호르몬 치료 포기한 친구들도 있는데 안타깝다"고 했다.

미지씨는 "수술 하기 전 의사가 '암 발병이 드문 케이스긴 하지만 트랜스젠더들은 수술 이후 제거하지 않은 자궁이나 전립선에 대한 주기적인 암 검진은 꼭 필요하다'고 했다"며 "나 같은 경우는 대장으로 질 재건을 했기 때문에 대장암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지씨는 "주기적으로 암 검진을 해야 하는데 굳이 모르는 사람들한테 '나 수술한 사람이니 질 봐달라'고 얘기하고 싶지 않으니까 갈 수 있는 병원은 좁아진다"고 토로했다.

"몇 안되는 병원마저 잃을까", 부작용 문제제기 못해

요한씨는 "시스템은 없고 병원의 권력은 막강하다 보니 이같은 일이 반복되어도 병원이 문제 없이 영업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것 같다"며 "괜히 문제제기를 했다가 눈 밖에 나면 몇 안되는 병원마저 잃게 되는 것 아닌가 두렵다"고 말했다. 실제 이 병원에서 2, 3년째 유사한 부작용을 겪고 있는 환자는 한국일보가 파악한 것만 5명 이상이지만, 모두 소송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길 꺼리고 있다.

부작용을 어디에 호소조차 못하는 현실도 참담하기만 하다. 부작용을 검증해줄 상급 병원도 없고, 카테터를 끼고 염증이 도지는 상황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판단할 기준도 없다.

의료진의 자격이나 수술의 필요조건 등을 규정한 정부 지침은 아예 없고, 의료계 가이드라인은 대한비뇨기과학회가 1990년에 승인한 게 전부다. 이마저도 의사의 자격이 아닌 트랜스젠더의 자격을 규정하고 있다. 정부나 국회가 나서서 가이드라인을 만든 스웨덴ㆍ영국의 사례와 크게 다르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의 박한희 변호사는 “트랜스젠더를 주 고객으로 하는 병원에 대해 비판글을 올렸다가 정보통신법상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한 트랜스젠더가 법률 자문을 구하러 온 적도 있었다”며 “얼마 뒤 의뢰인으로부터 연락이 끊겼는데 게시글이 내려져 있었다”고 말했다.

성준씨는 “트랜스젠더를 주 고객으로 하는 병원에서조차 환자에게 반말ㆍ모욕을 하거나 ‘이 병원 덕에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니 고마워 해야한다’는 식의 시혜적 태도를 접할 때가 많다”며 “이 말에 화가 나면서도 현실적으로 대안이 없기 때문에 항변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찬형씨도 "우리가 사회적 소수자라는 사실만으로 감당해야 하는 현실의 벽이 너무 높다"며 "우리의 존재를 사회가 인정하고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현종 기자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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