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제20대 대통령선거(내년 3월 9일)를 1년 앞두고 보수진영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그간 유력한 야권의 차기 대선후보로 꼽혀 왔지만 사퇴 후 첫 공개된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30%를 돌파하며 여야를 통틀어 1위로 수직 상승하면서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에 맞서 온 윤 전 총장은 '반문(反文) 세력의 상징성'을 독점하며 명실상부한 범보수 야권의 선두주자 지위를 굳힌 셈이다.
그러나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마냥 좋은 표정을 지을 수 없는 상황이다. '정권 교체'라는 공동 목표를 감안해 반가운 기색도 엿보이고 있지만 아직까지 윤 전 총장을 '국민의힘 사람'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탓이다. 윤 전 총장이 야권 주자로 우뚝 설수록 국민의힘 잠룡은 존재감을 잃을 가능성도 고민거리다.
윤 전 총장 사퇴의 정치적 파급력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윤 전 총장 사퇴 다음날인 지난 5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23명을 상대로 차기 대권주자 적합도를 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한 결과, 윤 전 총장은 32.4%로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다. 여권 유력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24.1%),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14.9%)를 단번에 압도했다.
지난 1월 "살아가는 과정에 '별의 순간'은 한 번밖에 안 온다"며 윤 전 총장의 정치적 결단을 강조했던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윤 전 총장이 별의 순간을 잘 잡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윤 전 총장의 급부상은 ‘반문'이란 상징성을 확보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윤 전 총장이 4일 사퇴의 변으로 "우리 사회가 오랜 세월 쌓아올린 상식과 정의가 무너지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보고 있기 어렵다"고 언급한 것도 현 정부의 검찰개혁에 맞선 자신을 ‘반문 대항마'로 각인시킨 계기였다.
윤 전 총장의 급부상은 국민의힘 대선주자들의 존재감을 약화시키는 ‘블랙홀’ 효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윤 전 총장이 독보적인 존재감을 나타내면 낼수록 함께 경쟁하는 국민의힘 주자들의 입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KSOI 조사에서 야권 주자들의 지지율 성적표는 초라했다. 윤 전 총장을 제외하면 홍준표 무소속 의원(7.6%), 유승민 전 의원(2.0%), 원희룡 제주지사(1.3%) 순이었지만 세 사람의 지지율의 합은 윤 전 총장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전 총장으로 인해 대선을 위해 절치부심 준비하고 있는 당 내 주자들의 존재감이 사라져 버릴 수밖에 없다"며 "윤 전 총장이 여권의 견제를 받아 휘청거리기라도 하면 그 땐 방법이 없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 의원은 "대선까지 남은 1년 동안 윤 전 총장과 당내 주자들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경쟁 방식을 당이 찾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은 윤 전 총장 활용법 구상에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실정이다. 윤 전 총장 주변과 정치권에선 '제3지대 세력화' 얘기가 나오는 데다 국민의힘 내에서도 “윤 전 총장이 현재 모습의 국민의힘으로 걸어 들어올 가능성은 없다"는 회의적 관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8일 '윤 전 총장과 국민의힘이 함께할 방법이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본인 판단과 의지를 먼저 밝혀야 저희 입장을 이야기할 수 있다"며 말을 아꼈다.
그러나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에 따라 양측 간 관계 설정이 변화할 가능성은 거론된다. 만약 국민의힘이 오세훈 후보로 선거를 치러 민주당에 승리할 경우 국민의힘은 향후 대선 정국에서 구심점을 확보할 수 있다. 윤 전 총장도 범야권 주자로서 대선에 임하기 위해서는 '국민의힘'이란 조직의 힘이 필요하다.
반대로 민주당이 승리하거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로 단일후보가 결정된다면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은 큰 폭의 재편이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국민의힘이 서울시장 보선에서 지면, 당(지지율)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질 것"이라며 "윤 전 총장은 (서울시장 선거의) 여러 변수들을 관망하다가 국민의힘이 보선에서 패할 경우 제3지대에서 흡수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