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전환자도 나라를 지키는 훌륭한 군인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던 변희수(23) 전 육군 하사가 3일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 군의 폐쇄성이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육군은 지난해 변 전 하사의 신체 변화를 '심신 장애'로 규정하고 강제 전역시켰다. 그러나 변 전 하사는 군이 ‘안보 위험분자'로 규정한 종북주의자도, 심신 미약자도 아니었다. 성별만 바뀌었을 뿐, 군인으로서 임무를 수행하는 데 결정적 문제가 없었다. 성 전환자의 입대를 적극 허용하는 세계적 흐름에 뒤처진 군의 태만과 다양성을 품지 못하면서 ‘병역 자원 급감’만 우려하는 군의 이중 행보가 비판을 받고 있다.
육군은 전차 조종수였던 변 전 하사가 2019년 11월 성 전환 수술을 받고 복귀하자 3개월 만인 지난해 1월 그를 '심신장애에 따른 전역대상자'로 판단하고 강제 전역 처분을 내렸다. '군은 특수 조직인 데다 군인이 성 전환 수술을 받은 사례가 창군 이래 처음이라 변 전 하사를 곧바로 여군으로 복무시키는 건 무리'라는 게 당시 군의 설명이었다.
'불가피한 전역 결정'이라는 논리였지만, 이후 군은 그 '불가피성'을 해소하기 위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변 전 하사 같은 소수자들이 더 늘어날 텐데, 그들을 어떻게 품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없이 '내치고 끝'이었다.
문홍식 국방부 부대변인은 4일 정례브리핑에서 ‘지난 1년간 성 전환자 군복무 관련 제도를 개선했거나 개선을 검토했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구체적으로 논의한 바 없다”고 밝혔다. 지난 1년간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사안, 더구나 '인권'이 달린 문제를 손 놓고 있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군은 지난해 변 전 하사가 전역하자마자 그를 ‘민간인’으로 규정하며 거리 두기에 바빴다. 성 전환자가 또다시 강제 전역 조치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군인사법을 개정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도, “변 전 하사의 전역은 일할 권리와 성 정체성에 기초한 차별을 금지하는 국제인권법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유엔 인권이사회 전문가들의 지적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변 전 하사가 민간인이기에 군이 관여할 바가 아니라는 식이었다.
3일 변 전 하사의 부고에 군은 “그가 민간인이 됐다”며 입장을 내지 않았다.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에 비판이 쏟아지자, 국방부는 4일 정례브리핑에서 뒤늦게 “안타까운 죽음에 애도를 표한다”고 했다.
군의 이 같은 태도는 변 전 하사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요인이 됐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8월 육군참모총장을 상대로 ‘전역 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한 변 전 하사는 다음 달 첫 변론을 앞두고 있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이 변 전 하사가 전역할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다.
성 소수자의 군 복무는 군사력이 막강한 선진국에선 이미 '정리된 문제'다.
미국은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3년 ‘동성애자임을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는 이른바 ‘동성애자 군복무 금지법’을 실시해 논란이 됐다. 이 때문에 1만3,000여명이 넘는 군인이 군복을 벗었고 ‘우수 인재 유출’ 논란이 일었다. 2010년 마이크 멀린 합참의장이 미 상원에 출석해 “동성애자 군인이 그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복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믿는다”고 공개 발언하면서 동성애자 군 복무가 허용됐고 이후 트랜스젠더에게도 문이 열렸다. “능력만 있다면 군 복무를 하게 하는 것이 강한 군대”라는 것이 세계 군사력 1위인 미국의 선택이었다.
인권위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 독일, 호주, 캐나다, 이스라엘 등 최소 18개국에서 성전환자의 군 복무를 인정하고 있다. 이에 일각에선 “기를 쓰고 군 복무를 기피하려는 시대에 성 전환을 해서라도 끝까지 조국을 지키겠다고 한 사람을 품지 못하는 군을 과연 건강하고 강한 군대라고 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