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에 대통령까지 화들짝...정권 아킬레스건 건드린 LH 투기 의혹

입력
2021.03.0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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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공정성=인화성 높은 이슈
개인적 투자라도 도덕적 비판 불가피
흔들리는 정책 신뢰성...정부 신속 대책 추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광명·시흥지구 사전 투기 의혹이 일으킨 파문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의혹이 제기되자마자 이례적으로 정세균 국무총리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까지 즉각 전방위 조사와 엄벌을 지시하고 나섰다. 그만큼 파괴력이 큰 사안이란 의미다.

정부의 아킬레스건인 부동산 관련된 의혹인 데다 부동산 정책을 실행하는 주체들이 연루됐다. 투기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2·4 주택 공급대책’ 추진은 물론 공공성을 위해 투기 차단에 역점을 뒀던 부동산 정책들의 정당성마저 허물어질 수 있다.


국토부와 광명ㆍ시흥시 공무원도 조사

정부는 3일 LH 직원의 투기 의혹이 불거진 광명·시흥지구 외에 다른 3기 신도시까지 조사 범위를 넓힌다고 밝혔다. 수도권 3기 신도시는 2018년 12월 지정된 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 인천 계양과 이듬해 5월 고양 창릉, 부천 대장에 이어 지난달 말 광명·시흥까지 총 6개 지구다. 수도권 이외 지역은 부산 대저, 광주 산정 2개 지구다.

투기 의혹 조사 대상은 LH 직원은 물론, 국토교통부와 관계 공공기관 직원 및 그들의 가족으로 확대됐다. 조사는 국무총리실이 주도하고 국토부 내에서는 공공주택추진단이 협조한다. 위법·부당한 거래로 확인될 경우 수사의뢰 및 고소·고발 등 엄정 조치할 방침이다.

여기에 경기 광명시와 시흥시도 자체적으로 소속 공무원들의 신도시 예정지구 내 토지 취득 여부를 전수 조사한다. 광명·시흥지구는 전체 면적(1,271만㎡) 중 811만㎡가 광명시, 약 460만㎡가 시흥시에 속한다. 이 지역은 수년 전부터 신도시 유력 후보지로 거론됐다.

전날 조사에 착수한 국토부는 LH 직원 13명이 광명·시흥지구 발표 전 토지를 매입한 사실을 확인됐다. 이들이 사들인 토지는 모두 12필지다. 총 면적은 약 2만7,000㎡이고 거래 시기는 2017년 8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다. 지목은 논, 밭이 대부분이고 1필지는 대지다.

해당 직원들에 대해선 직위해제 조치가 완료됐다. 국토부는 이들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땅 투기를 한 것인지 조사 중이다.


이례적 신속 대응, 왜?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이 기자회견을 통해 LH 직원들의 광명·시흥지구 사전 투기 의혹을 폭로하자 정부는 물론 청와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도 비상이 걸렸다.

전날 정 총리가 “다른 택지개발지구에도 유사 사례가 있는지 신속히 확인하라”고 지시한 데 이어 이날 문 대통령도 강민석 대변인을 통해 △빈틈없는 토지 거래 전수조사 △위법 확인 시 엄중히 대응 △신속한 제도적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신속하게 매듭을 지어야 한다는 기조는 민주당 지도부도 마찬가지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이날 “의혹이 사실이라면 업무상 취득한 비밀을 동원해 사익을 챙기려 한 중대범죄”라며 “정부는 사실 관계를 신속히 조사해야 하고 필요하면 수사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사 결과에 따라, 주택 공급 구원투수로 지난해 임명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까지 흔들 수 있는 우려에도 당청이 의혹 폭로 하루 만에 발빠른 대응에 나선 건 민심의 분노를 자아내는 인화성 높은 이슈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그간 25번의 부동산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매번 앞세운 투기 근절과 공익 실현이 되레 부메랑으로 돌아올 상황이다.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고 3기 신도시 전수조사에서 추가로 위법·부당한 토지 거래가 드러난다면 정권 말 ‘레임덕 트리거’로 부상할 폭발력을 안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장 LH가 주도해야 하는 주택 공급대책의 신뢰성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공공이 주도하는 재개발이나 공급이 공정하지 않다는 게 밝혀지면 정책 신뢰성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밖에 없어 상당히 심각한 문제”라고 밝혔다.


'뒷북 대책’ 내놓았지만

만약 LH 직원들의 땅 매입이 내부 정보를 활용하지 않은 개인적 투자로 판명된다고 해도 공공사업의 주체로서 부적절한 투자라는 비난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신도시는 기본적으로 원주민을 이주시키고 LH 등 공공기관이 택지를 개발하는 방식이다. 토지수용이란 강제력이 수반되는 곳에서 해당 기관의 직원이 이익을 얻으려는 투자이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든 국민적 공분이 일어난 만큼 정부는 이날 다급히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신규 택지개발과 관련된 국토부, 공공기관, 공기업 직원은 원칙적으로 거주 목적이 아닌 토지 거래를 금지하고 불가피할 경우엔 사전에 신고하도록 하는 방안을 신속히 검토하기로 했다. 또 의심 사례에 대한 상시 조사와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위법·부당한 사항에 대해서는 인사상 불이익을 줄 계획이다.

제도적으로 처벌 범위도 확대한다. 현 공공주택특별법에 따르면 업무 처리 중 알게 된 정보를 목적 외로 사용하거나 타인에게 누설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게 돼 있다. 정부는 처벌 대상 범위를 넓혀 실효성 있는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관련 법령 개정 등을 검토하고, 우선 공공기관별 인사규정 등 예규를 통해 즉시 시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지섭 기자
강진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