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멧비둘기입니다. 농경지나 공원 등에서 나무열매, 볍씨, 씨앗을 주로 먹고 사는 한반도 텃새이지요. '닭둘기'라 불리며 천덕꾸러기가 된 집비둘기와는 다른 종인데요, 최근에는 도심에서도 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가 건물 유리창이나 투명방음벽 등에 충돌해 죽는 새 가운데 가장 많은 종인 것 알고 계셨나요? 연중 번식을 하기 때문에 개체수가 많은 것도 원인이고요. 또 이른바 '조류 로드킬'이 숲이나 들판에 있는 건물 유리창에서 주로 발생하는데 제 서식지와도 겹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매, 수리부엉이, 긴꼬리딱새 등 멸종위기종을 포함해 국내에서 연간 800만마리의 새가 충돌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조류 충돌을 막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환경부는 최근 방음시설을 설계할 때 생태적 측면을 고려하는 의무조항을 신설하고, 조류 충돌 방지를 위한 문양이 들어간 방음판을 사용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한 '방음시설의 성능 및 설치기준' 일부 개정안을 고시했습니다. 경기도는 이달 공모를 통해 투명방음벽이 설치된 도로를 선정해 시설을 개선하고, 현장에서 야생 조류 충돌 현황을 조사하는 시민 모니터링단도 모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만으로는 조류의 희생을 막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방음벽보다 일반 건축물에서 발생하는 피해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국립생태원 조사 결과 건축물에 부딪혀 죽는 조류는 연간 765만마리로 방음벽에 충돌하는 사례(23만마리)를 30배가량 웃도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우리나라 건축물 720만동 가운데 공공건축물 비율은 20%, 민간건축물은 80%가량 된다고 합니다. 공공건축물은 창에 높이 5㎝, 폭 10㎝ 간격으로 무늬를 넣도록 하는 등 점차 개선되고 있지만 민간 부문에는 이를 강제화할 수 없는데요.
숲이나 들판 근처 4층 이하 전원주택이나 펜션에서 조류 충돌이 많이 일어나는 것을 감안하면 이에 대해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입니다. 이들 건물에서 새들이 많이 충돌하는 이유는 4층 정도 되는 높이의 나무에 머무는 새가 같은 높이로 이동하면서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조류 충돌을 연구해 온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관리연구실장은 공공 부문의 개선과 함께 조류 충돌 관련 교육, 홍보를 통해 민간의 참여를 확대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는데 이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조류 충돌이 발생하는 유리창에 촘촘히 스티커를 붙이거나 긴 줄을 늘어뜨리는 방법도 있고요, 조류 충돌이 일어난 지점과 새 종류를 기록하고 모니터링하는 작업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2012년부터 지난 1월까지 시민들이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수집한 조류 충돌 피해 수만 약 1만9,000마리에 달하는데요. 정부가 조류 충돌 저감 방안을 세우는 데 유용하게 사용된다고 합니다.
방음벽, 유리창 모두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시설입니다. 시설을 세우지 말자는 게 아니라 조금만 신경쓰면 불필요한 죽음을 막을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