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 성차별 발언 파동, 아직도 찜찜한 이유

입력
2021.03.0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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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초 도쿄에 도착해 2주간 자가격리를 거쳤다. 그 기간 TV에서 가장 많이 본 뉴스는 모리 요시로(森喜朗·84) 전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장의 성차별 발언 파동에 관한 것이었다. “이사회에 여성이 많으면 말을 많이 하므로 회의가 길어진다”는 그의 발언은 21세기 주요 7개국(G7) 국가에서 개최될 국제대회를 이끄는 조직의 장이 내뱉은 말이라곤 믿기지 않았다.

모리 위원장이 사퇴하고 빙상선수 출신 여성 정치인 하시모토 세이코(橋本聖子·56) 전 올림픽담당장관이 임명되면서 논란은 일단락된 듯하다. 하지만 아직도 찜찜함이 남는 이유는 뭘까.

일본 언론이 모리 전 위원장의 발언을 “성차별 발언”이 아닌 “여성 멸시 발언”으로 줄곧 지칭한 것부터 묘했다. 문제의 발언은 이사회의 여성 이사 비율을 40%로 높이라는 목표를 희화화하며 나왔다. 남성 일색이던 국제 스포츠단체 이사회에서 여성 대표성을 높이자는 국제적인 성평등 추구 움직임을 대놓고 조롱한 것이다. ‘여성 멸시’라는 표현은 사안의 핵심을 ‘성차별’이란 사회 문제에서 모리 개인의 실언 정도로 축소하려는 의도는 아닌지 의구심도 들었다.

여론의 초점이 성차별 자체보다 일본의 국가 이미지 실추에 더 맞춰지는 것도 꺼림칙했다. 모리의 발언이 처음 보도된 다음 날, 트위터를 뒤덮은 해시태그는 “모리 여성 멸시 발언”이 아니라 “일본의 수치(#日本の恥)”였다. 외신에 크게 보도됐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을 일본 언론은 강조했다. 해외에 대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면 과연 그가 사퇴했을까.

결말도 깔끔하지 않다. 후임인 하시모토 위원장은 과거 스케이트연맹 회장이던 시절 젊은 남성 피겨선수에게 술자리에서 ‘강제 키스’를 한 적이 있다. ‘위력에 의한 성추행’으로 볼 수 있는데, 이런 사람이 후임으로 적절한지 의문이다. 사람만 바뀌었을 뿐인데 언론이 갑자기 조용해진 것도 놀랍다. 스포츠단체 내 성차별 등 구조적 문제를 조명한 보도도 찾기 힘들다. 이대로라면 제2, 제3의 모리 소동은 언제든지 또 일어날지 모른다.


도쿄=최진주 특파원 pariscom@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