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의 조건

입력
2021.03.01 19:00
25면

편집자주

우리나라 대표 원로지성이자 지식인들의 사상가로 불리는 김우창 교수가 던지는 메시지. 우리 사회 각종 사건과 현상들에 대해 특유의 깊이 있는 성찰을 제공한다.



2월 초 정부를 비롯하여 여러 공공기관에서 빠른 속도로 대량의 아파트를 건설 공급하겠다는 발표가 보도되었다.

의식주라는 말이 있다. 목숨을 부지하는 데에는 식량이 있어야 하고, 추위를 막아내는 데에는 옷이 필요하다. 그러나 생활과 심리의 안정에 절대 필요한 것이 편히 지낼 수 있는 집이다. 의(衣)는 추위를 막아내는 데에도 필요하지만,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사회 관계에 중요하기 때문에 식(食)에 선행하여 이야기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먹는 일은 구걸하여서라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옷을 얻어 입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주거이다. 옛날에는 친척 친지에 의지하여 잠깐씩은 잠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지금은 그것이 쉽지 않다.

집은 많은 경우 가족이 함께 거주하는 공간인데, 이때의 가족은 부부 그리고 그 자녀로 구성된다. 전통적인 가족은 부모 또는 다른 대가족의 여러 구성원을 포함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지금도 부모나 조부모를 포함하는 가족이 없는 것은 아닌데, 이러한 가족이 한 집에서 산다면, 그것은 재정적인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이유가 작용하는 것일 수도 있다. 노령의 부모나 조부모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수도 있고, 또 심리적인 상호 의존 관계를 쉽게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부모와 자식의 세대가 한 집에 살면서 갈등이 있는데, 자신들이 살고 있는 2층 주택의 각층에 부엌을 따로 설치하였더니, 원만한 화해의 삶이 가능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 이러한 분리 독립 그리고 협동의 생활은 복층 아파트에서도 가능하다.

하나를 원하면서 그에 모순되는 다른 하나도 원하는 것이 인간이다. 사사로운 공간을 원하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섞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아파트는 많은 사람들이 살면서도 공간을 공유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도쿄에서 찾았던 한 아파트는 고층인데도 여러 사람들이 차와 식사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여러 곳에 구비되어 있었다. 뉴욕 시에서는 한때, 광장 만들기 운동이 일었다. 교차로를 넓혀 광장이 되게 하고 그 둘레에 음식점이나 간이 매점을 두어 이웃 간의 교류가 가능하게 한다는 목적이었다.

공유 공간은 생활의 필요가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필요를 멀지 않은 곳에서 해결하기 원한다. 그리하여 집단 거주지에는 적절한 상가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도시 지역의 교통을 줄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실적·심리적 필요들에 더하여 사람들의 마음에는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산업 혁명의 진전과 더불어 도시가 확대되자, 도시와 수풀을 하나로 하는 '정원도시'의 개념이 태어났다. 도시에 공원이 따르는 것은 그로부터 시작하였다고 한다. 정원도시라는 개념을 생각하였던 영국의 도시 설계자 에베너저 하워드는 농경지나 수림에 접속되는 도시를 생각했다. 그리고 소규모의 도시 구역이 보다 큰 지역으로 연쇄될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한국의 지형은 대체로 도시를 산악에 둘러싸이게 한다. 산을 잘 살린다면, 주거 지역은 저절로 정원지역의 연쇄가 될 수 있다.

위에서 말한 것은 아파트를 지을 때에도, 건축물을 높이 올리는 일 이외에 사회관계, 생활의 필요 그리고 자연과의 환경을 적절하게 고려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필요한 것은 이런 문제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을 널리 참조하는 일이다. 건설은 땅 위에 사는 인간의 모든 필요를 두루 참고하는 것이라야 한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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