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살린 유연근무제

입력
2021.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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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유연근무제 도입 급증
대면에 익숙한 기업문화 관행에 변화
일과 돌봄 병행 가능한 넥스트 노멀 기대



2021년에도 코로나19는 계속되고 그 충격으로 한국사회도 변하고 있다. 이런 변화의 대부분은 고통스럽고 암울한 것이지만, 의외로 긍정적인 것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일터의 변화다. 2020년 2월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정부는 기업들에게 재택근무나 근무 시간 조정을 요청했다. 근로자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다. 전 세계에 몰아친 코로나19의 위기 속에서 달리 방법을 찾지 못한 기업들은 형편 되는 대로 직원들을 집에서 일하게 하고 출퇴근시간을 변경했다.

그 결과 2020년 한국의 기업에서는 유연근무가 크게 증가했다. 유연근무란 근로자들이 필요에 따라 일하는 시간이나 장소를 변경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시차출퇴근제, 선택시간근로제, 재택근무제, 원격근무제 등이 있다. 통계청 조사에서 유연근무 참여자는 2015년 전체 취업자의 4.6%에서 2020년 14.2%로 증가했고, 이런 증가의 3분의 1 이상이 2020년 한 해 동안 이뤄졌다. 2020년 9월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실시한 매출액 100대 기업 대상 조사에서는 응답 기업 69곳 중 88.4%가 재택근무를 실시한다고 답했다.

유연근무제도는 기업에서 환영받았을까? CEO의 마인드나 기업문화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국의 대다수 기업에서 유연근무는 그동안 ‘디커플링(decoupling)’이 뚜렷한 제도 중 하나였다. 정책의 디커플링이란 제도화되어 있지만 실제로 그것의 사용이 미미한 수준에 그치는 현상을 말한다. 유연근무제도의 경우 근로자들이 서로 다른 시간이나 공간에서 일하기 때문에 직접 대면방식을 선호하는 기업의 관행에 어긋난다.

코로나19는 이런 오랜 관행을 일시에 바꿔 버렸다. 그 덕분에 기업 문화와 조직구성원들의 인식도 바뀌는 중이다. 2020년 필자가 이화여대 이은아 교수 등과 함께 연구한 근로시간 유연화 연구에서 장시간 근로와 위계적 문화에 길들여진 한국의 기업에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근로시간과 공간의 유연화, 즉 유연근무제도의 확대다.

유연근무제를 시행 중인 30개 기업 인사담당자와의 인터뷰에서 얻은 결론은 거의 비슷했다. 2017년 정부가 주52시간 노동제를 법제화한 후 대기업을 중심으로 선택근무제(1개월 이내의 정산기간을 평균해서 1주간의 소정근로시간이 40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 1주 또는 1일 근무시간을 조정하는 제도)를 도입했지만, 별 성과는 없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같은 공간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수를 줄이기 위해 이 제도가 확대됐다. 이를테면 하루 중 코어타임이라고 불리는 4,5 시간을 정한 뒤 그 외의 시간은 근로자들이 자율적으로 정해서 일하는 방식이다.

근로자들이 일하는 시간을 조정할 수 있게 된 결과는 어땠을까? 첫 번째 효과는 업무 효율성의 향상이다. 일하는 시간이 줄기 때문에 그만큼 근무시간에 집중해서 일한다. 두 번째 효과는 근로자의 만족도 향상이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이 제도가 시행된 후 신입직원의 퇴사율이 0%에 가깝다고 말했다. 세 번째 효과로는 서로 퇴근시간이 달라 회식이 줄어 폭언이나 폭행, 성희롱 등 직장 내 괴롭힘이 줄었다. 가장 큰 효과는 근로자들이 일과 돌봄을 함께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성과는 성별과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 맞벌이와 한부모 가족이 아이를 돌보는 일은 물론, 중년 세대가 노년을 준비하는 데도 필요하다. 코로나19 이후 일터는 어떻게 달라질까? 얼마 동안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겠지만, 유연근무는 넥스트 노멀(next normal)이 되어야 한다. 정부도 기업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ㆍ전 한국여성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