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장군 한 서린 산성…100년 방치되다 풍경 명소로

입력
2021.02.23 17:00
21면

담양 금성산성과 담양호 용마루길

전남 서부에 폭설이 내린 지난 18일, 담양에도 발목이 빠질 정도로 눈이 내렸다. 다음날 담양의 풍광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금성산성에 올랐다. 이번 겨울 남도에서 마지막일 수 있는 설경이 펼쳐졌다.

금성산성은 순창 강천산과 등을 맞대고 있는 금성산(603m) 정상 부근을 한 바퀴 두르고 있다. 내성과 외성을 합한 전체 길이는 7㎞가 넘고, 내성만 해도 859m에 이르는 대규모 산성이다. 무주 적상산성, 장성 입암산성과 함께 호남의 3대 산성으로 꼽힌다. 고려 중기 이전에 쌓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조선시대 들어 광해군 때 내성을 쌓았고 효종 때 다시 한번 중수하며 병영의 면모를 갖췄다는 기록이 있다. 동학농민운동(1894) 때는 녹두장군 전봉준이 인근 순창 쌍치면에서 체포된 후 1,000여명의 농민군이 일본군과 피비린내 나는 격전을 벌이다 전사한 곳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곡식 창고와 객사 등 성내의 모든 시설과 4개 문루가 불에 타 사라졌다. 찬바람 부는 겨울 문턱인 12월이었다.



100년 가까이 방치되던 성은 향토 사학자들의 노력으로 1981년 지방기념물로 지정되고, 1991년 국가사적으로 승격됐다. 1998년 남문(보국문)과 남문 내성의 문루(충용문)를 복원하고 성곽 보수 공사도 진행해 현재는 전 구간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게 정비된 상태다.

탐방객은 대개 조망이 뛰어난 보국문까지 왕복하는데, 주차장에서 약 2㎞로 넉넉잡아 왕복 2시간이다. 성곽 전체를 돌아오자면 5시간은 족히 걸린다. 보국문까지 가는 길의 절반은 경사가 완만한 임도여서 그다지 힘들지 않다. 등산이라 하기에는 싱겁고, 산책 코스로는 조금 버거운 수준이다. 담양은 어디에나 대나무가 흔하다. 초입의 산행 길은 오른편에 대나무 숲, 왼편에 솔숲을 끼고 걷는다. 굳이 대나무 테마 공원을 찾지 않아도 싱그러운 대숲의 기운이 충만하다. 임도가 끝나면 본격적인 등산이다. 계단이 거의 없고, 삐쭉하게 튀어나온 바위가 많아 걷는 데 조심해야 한다.



이마에 땀이 맺히나 싶으면 커다란 암반 위에 쌓은 석축 사이로 보국문이 보인다. 문루에 오르면 3개 방향으로 전망이 시원하다. 정면으로 담양에서 광주로 이어지는 너른 들판이 펼쳐지고, 멀리 무등산의 윤곽도 어렴풋이 보인다. 오른쪽 산자락 사이로 담양댐 호수가 조각처럼 보이고, 그 뒤로 바위봉우리가 웅장한 추월산(731m)이 우뚝 서 있다.

산성의 서면을 따라 노적봉과 철마봉을 거쳐 서문 터까지 걸으면 담양호와 어우러진 산세가 그림처럼 아름답다는데, 전날 내린 폭설에 발목이 잡혔다. 대신 바로 뒤의 충용문까지만 올라도 시야는 한층 넓어진다. 보국문에서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는 낮은 담장과 그 뒤로 펼쳐지는 풍광이 한편의 수묵화다. 충용문 옆에 쌓아 놓은 돌탑 너머로 이름 모를 능선이 겹겹이 이어진다. 장렬하게 스러져 간 동학농민군의 영혼을 추모하는 듯하다.


금성산성 남문 아래에 연동사라는 작은 암자가 있다. 제법 넓은 골짜기에 극락보전 전각만 있는데, 길목마다 습관처럼 ‘천년고찰’이라 쓴 안내판을 세워 놓았다. 암자 꼭대기에 있는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석불이 그 근거다. 오랫동안 땅에 파묻혀 상체만 보이던 것을 근래에 기단을 만들고 전체 모습이 드러나게 세웠다. 윤곽이 뚜렷하지 않아 하다 만 조각 같지만, 그래서 더 정감이 가는 불상이다. 석불보다 놀라운 건 처마처럼 드리우고 있는 거대한 바위다. 진안 마이산처럼 역암ㆍ사암ㆍ이암 등의 퇴적암층이 겹쳐 있어 담양의 지질 명소로 지정돼 있다.


금성산성 산행이 힘들면 담양호 북측 호숫가에 조성한 용마루길을 걸어도 좋다. 담양호 국민관광지에서 호수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산자락을 따라 약 3.9㎞ 산책로가 이어진다. 산성에서 내려다보는 것과 반대로 호수 건너편으로 금성산 능선이 수려하게 펼쳐진다. 절반 이상이 목재 덱이어서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담양= 최흥수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