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머까지 등돌린 '확률형 아이템'… "바다이야기와 뭐가 다른가"

입력
2021.02.22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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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확률형 아이템 확률 공개 규제 도입 검토
게임사들 "게임의 재미는 본질...대표적 영업비밀"
게임 규제 때 게임사 편 들었던 이용자들도 비판

국내 게임사들의 주요 수익 모델인 '확률형 아이템'이 게임 이용자와 정치권의 뭇매를 맞고 있다. 게임사가 아이템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과도하게 사행적인 요소를 더했다며 정치권에서는 이를 법으로 규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게임에 규제가 더해질 때마다 게임사 편을 들었던 이용자들도 "게임사의 업보"라며 이번에는 규제 필요성을 강조하는 분위기다.

게임법 개정 가시화

22일 업계와 국회에 따르면, 오는 24일 열리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이 상정된다. 개정안은 확률형 아이템 개념을 처음 정의하고, 유료 확률형 아이템은 물론 유·무료가 결합된 형태의 2중 구조 확률형 아이템까지 습득 확률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했다.

확률형 아이템이란 개봉 전에는 결과를 알 수 없는 '뽑기' 형태의 상품을 말한다. 상품 마다 정해진 확률이 다르고, 우연적 요인도 작용하면서 이용자의 과소비를 일으키는 사행성 상품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지난 2014년 정치권에서 확률형 아이템을 법으로 규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게임업계는 유료 확률형 아이템의 습득률을 스스로 공개하겠다며 '자율 규제'를 천명했다.

하지만 정작 게임 이용자들은 게임사가 자율 규제의 허점을 이용해 특정 아이템의 확률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법제화를 요구하고 있다. 실제 엔씨소프트의 모바일 게임 '리니지2M'에서는 특정 아이템의 습득 방법을 2중 구조로 만들어 확률을 공개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엔씨소프트는 "현행 규제를 지켰다"는 주장이지만, 게임 이용자들은 "규제를 회피한 꼼수"라고 비판한다. 넥슨 역시 모바일 게임 '메이플스토리'에서 확률형 아이템 습득 확율을 조작했다는 의혹에 휩싸이기도 했다.

"영업 비밀" 주장에 "단기 수익용" 비판

규제의 칼날이 조여오자 게임사들은 '영업비밀'을 이유로 들며 현행 자율 규제를 이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게임사 이익단체인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지난 15일 문체위에 보낸 의견서를 통해 "고사양 아이템을 일정 비율 미만으로 제한하는 등의 밸런스는 게임의 재미를 위한 가장 본질적인 부분 가운데 하나이며, 사업자들이 비밀로 관리하는 대표적 영업비밀"이라며 "확률이 '이용자의 게임 진행 상황'에 따라 항상 변동되므로 해당 게임의 개발자도 확률의 정확한 수치를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고 주장했다.

강제 셧다운제(게임시간 제한 규제) 등 정치권의 게임 규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때마다 게임사 입장을 지지했던 게임 이용자들도 이번 게임협회의 주장에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16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공개 및 모든 게임 내 정보의 공개를 청원한다'는 청원글은 현재 1만2,500여명의 동의를 받은 상태다. 청원인은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하는 게임들이 2004년 한국 사회를 강타했던 '바다이야기'와 도대체 무엇이 다르겠냐"고 썼다.

전문가들은 국내 게임사가 게임의 완성도를 높이기 보다는 확률형 아이템을 통한 단기 수익에만 매몰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소수의 열성 이용자만 위한 게임을 만들면서 해외 시장에서 국내 게임의 입지가 줄어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엔씨소프트의 경우 지난해 해외 매출 비중이 16.7%로 1년 전보다 5.7%포인트 줄었으며, 넥슨도 64%에서 44%로 비중이 감소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이용자의 반발은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키게 되고 이렇게 되면 게임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가 들어올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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