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정부 말까지 공기관장 3분의2 교체 대기 중… ‘알박기 인사’ 논란 불보듯

입력
2021.02.22 04:30
본보 360개 공공기관 기관장, 감사 임기 전수 분석


최근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이전 정부가 임명한 산하기관 인사들의 '물갈이'를 주도한 김은경 전 장관이 유죄를 선고받은 가운데, 전체 360개 공공기관장의 3분의 2 가량은 내년 5월 문재인 정부 임기 종료 이전까지 교체 대상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기관의 감사직 가운데 75%도 교체 대상이다.

법원의 판단대로 이들에 대한 물갈이 인사가 원천차단될 경우, 내년 5월까지 문재인 정부가 임명하는 공공기관 수뇌부는 문 정부와 국정철학이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는 차기 정부에서 이른바 '알박기 인사'로 작용하며 갈등을 크게 증폭시킬 거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문 정부 임명 인사들, "다음 정권에도 2년 더"

21일 한국일보가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등록된 360개 공공기관의 기관장, 감사 임기를 전수 분석한 결과, 기관장 170명의 임기가 2021년 2월~2022년 5월 사이 만료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이미 임기가 만료된 기관장(21명) △임기가 별도로 기재되지 않은 기관장(32명) △현재 공석인 기관장(18개)까지 더하면 문 정부 잔여 임기 동안 기관장이 바뀔 수 있는 공공기관은 전체의 3분의 2가 넘는 241개(66.9%)에 이른다.

기관장보다 주목도는 떨어지지만, 기관장 못지 않은 처우로 일명 ‘낙하산의 꽃’으로 불리는 감사 자리도 대거 바뀐다. 알리오에 등록된 상임·비상임감사 382명 중 254명이 내년 5월까지 임기를 마친다. 여기에 이미 임기가 종료된 상태로 일 하는 22명, 감사 임기가 기재되지 않았거나 공석인 12곳을 더하면 288개(75.4%) 자리가 정권 말 '낙하산 인사' 대상이 될 수 있다.


갈등 부를 '알박기 인사' 리스크

공공기관장과 감사의 임기는 통상 3년이다. 문 정부 초기인 2017년 말~2018년 초 대거 임명된 낙하산 인사들이 임기 만료를 맞아 조만간 '다음 차례'를 맞는 셈이다.

특히 정권 막바지 선임되는 공공기관 임원은 ‘내 사람 챙겨주기’의 마지막 기회로 꼽힌다. 정권 입장에서는 대통령 임기가 끝날 때까지 국정 동력을 놓지 않으려는 의도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대거 교체가 뿌릴 '미래 갈등의 씨앗'은 만만치 않다. 올해 상반기 임기를 시작하는 기관장은 다음 정부가 들어서도 2년이 더 지나야 임기가 끝난다.

현 정부가 정권을 재창출한다 해도 보은 인사 등으로 임기 보장이 쉽지 않을 수 있지만, 특히 문 정부와 '국정철학'을 달리 하는 정부가 들어설 경우 공공기관 수뇌부와의 갈등은 심각해질 수 있다. 가령 '탈원전'에 반대하는 정부가 선출된다면 문 정부가 임명한 에너지 관련 공공기관장들의 비협조로 새로운 정부 정책이 원활하게 추진되지 않을 수 있는 셈이다. 심지어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도 재판 과정에서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인물을 앉히는 게 불가피했다. 관행이었다”고 주장해 왔다.


에너지ㆍ금융 기관장 대거 교체 앞둬

지금도 에너지나 금융정책 등 굵직한 경제정책을 담당하는 관련 공공기관장 상당수의 교체작업이 진행 중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산하 공공기관장 52명 중 40명(76.9%)의 임기가 내년 5월 이전 끝난다.

대표적으로 한국전력 자회사인 5개 발전공기업(남동, 남부, 동서, 서부, 중부발전)은 2~3월 현 사장의 임기 종료를 앞두고 후임자 공모가 마무리 단계다. 동서발전에는 지난 총선에서 울산 국회의원 후보로 나섰던 김영문 전 관세청장의 사장 임명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갈등이 일고 있다. 발전사 5사 대표노조는 최근 "비전문가에게 발전산업 미래를 맡기려는 터무니없는 도박"이라며 반발했다.

발전공기업 5개사 외에도 석유공사(3월), 한국수력원자력(4월), 한국전력(4월) 등 에너지 관련 공기업 사장 임기가 상반기 중 만료된다. 금융공기관 중에선 한국투자공사 사장(3월)과 신용보증기금 이사장(6월), 예금보험공사 사장(9월) 등이 줄줄이 임기 종료를 맞는다.

이런 우려와 관련해 아예 대통령과 공공기관 임원 임기를 맞추는 것이 대통령제 취지와 맞는다는 제언이 나온다. 유상엽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공기관장 임기를 ‘대통령 임기 내’로 정하면 불필요한 갈등을 해소하고 대통령의 임면권도 보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 = 박세인 기자
이유지 기자
장수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