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뒤 예능작가... 그 치열한 세상 아시나요"

입력
2021.02.22 04:30
21면
'#예능작가' 펴낸 김진태씨 인터뷰


빛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그림자가 존재한다.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대한민국 대표 예능 프로그램 뒤편의 작가들 얘기다. MBC '무한도전'의 김태호 PD와 MC 유재석은 알아도 이언주나 김란주 같은 작가들의 이름은 낯선 것처럼 말이다.

"프로그램을 같이 만드는 PD나 연예인은 조명이 많이 되는데 비해 예능작가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거든요. 제 가족들도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하게 잘 몰라요.(웃음) 우리들의 이야기를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갖고 있었죠."

30여년 경력의 베테랑 예능작가 김진태(56·에이나인미디어 대표 크리에이터)씨가 제목만 들어도 알 만한 대한민국 대표 예능 프로그램을 만든 작가 16명을 직접 인터뷰해 엮은 책 '#예능작가'를 펴낸 이유다. 김씨는 18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작가라고 하면 원고 쓰는 것만 생각하지만 그건 기본이고, 기획부터 출연자 섭외·관리 등 프로그램이 완성되기까지 예능작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16명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한민국 예능사가 훤히 보인다.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이면서 현재도 KBS '불후의 명곡' 현장을 지키는 임기홍 작가, 버라이어티 장르를 개척한 유성찬 작가, KBS '출발 드림팀' 등 게임 예능에 독보적인 김기륜 작가 등 1세대부터 tvN '꽃보다'와 '삼시세끼' 시리즈의 김대주 작가까지 총망라됐다. 1980년대 콩트코미디부터 공개 프로그램, 버라이어티, 최근의 관찰 예능까지 예능 프로그램의 트렌드가 정확하게 겹쳐진다.

예능작가의 역할도 그에 따라 변화를 거듭해왔다. "당시를 함께 했던 작가라면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누구나 있을 겁니다. 작가는 원고만 써서 보내면 촬영 현장에 갈 일이 없었는데 이젠 펜보다는 발로 뛰게 된 상황이 온 거죠." 전반적인 상황과 설정만 던져주는 관찰예능의 대본은 과거보다 그 비중이 줄었다. "(시골집에서 직접 음식 재료를 구하고 세끼를 직접 해결하는) '삼시세끼'의 가장 큰 대본은 텃밭(김대주 작가)"이라고 할 정도다. "그럼에도 발로 뛰든, 글로 쓰든 방식의 차이일뿐 작가의 중요한 역할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PD들조차 예능국을 꺼릴 만큼 푸대접 받던 과거에 비하면 최근 예능의 위상은 크게 높아졌다. 김씨는 "제작비가 많이 드는 드라마에 비해 가성비가 좋고, 숏폼 콘텐츠가 각광 받으면서 긴 호흡의 드라마보다는 예능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예능은 전례 없는 전성기를 누리면서도 동시에 위기를 맞고 있다. 동영상온라인서비스(OTT)나 유튜브 등 플랫폼 다변화로 경쟁은 더 치열해진 탓이다. "전에는 '뭐가 재미있냐'부터 생각했다면 이젠 너무 많아서 '뭐가 없냐'로부터 접근하게 됩니다."

새로운 곳에서 제 살 길을 모색하는 예능작가들의 도전도 계속되고 있다. 유튜브로 가서 실력 발휘를 하거나(구독자 139만명 거느린 '급식왕'), 아예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경우도 많아졌다.

무엇보다 김씨는 방송사가 독식하고 있는 프로그램 저작권을 작가들과도 나누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방송 포맷이 50여개국에 수출된 MBC '복면가왕(박원우 작가)'이나 JTBC '히든싱어(유성찬 작가)'의 경우 프로그램 아이디어를 낸 작가는 원고료와 재방료를 받는 것 외에는 아무런 권리를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 김씨는 "드라마작가는 원작 저작권을 갖는데 예능작가는 저희들이 기획하고 만든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저작권을 비롯한 아무런 지적재산권을 못 갖는다"며 "다양한 포맷의 프로그램 개발과 콘텐츠 발전을 위해서라도 예능작가들의 아이디어와 작업에 대한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영은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