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수가 반대한 검찰 인사 재가한 文... 검찰에 'No'라고 말했다

입력
2021.02.1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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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인사를 둘러싼 갈등이 촉발한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의 표명 후폭풍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할 수밖에 없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주도한 인사였다지만, 인사안을 재가한 건 문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새해 들어 검찰과의 '화해 무드'를 말했으나, '검찰과 타협할 생각은 없다'는 점을 인사로 증명했다.

청와대는 이번 파동이 '해프닝'이라고 선을 긋는다. 그러나 '소동'보단 '파동'으로 끝날 가능성이 현재로선 크다. 문 대통령의 사의 반려에도 신 수석은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접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검찰 불신이 재확인된 이상, 당청과 검찰 갈등은 다시 예열되기 시작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으로 크게 훼손됐던 국정 동력이 다시 위기를 맞았다.


박범계 손 들어준 文... "신현수 무력감 느꼈을 것"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신 수석이 사의를 표명한 상태라고 17일 확인했다. 신 수석은 검찰 출신인 동시에 문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서 박 장관과 윤 총장의 '중재자' 자리에 섰다. 그의 사의 표명 경위에 대한 청와대 등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렇다.

"최근 검찰 고위간부 인사 과정에서 검찰과 법무부의 견해가 달랐다. 신 수석은 양측이 조금 더 조율하고 확정했으면 했다. '검찰 입장을 더 들어 보자'며 법무부를 설득하려 했으나, 박 장관이 법무부 안을 청와대에 올렸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등 윤 총장이 거부한 소위 '추미애 라인'이 살아남은 안이었다. 문 대통령이 이를 재가했고, 법무부는 일요일인 7일 갑작스럽게 인사를 발표했다. 이에 신 수석이 물러나겠다고 했다."

정치권에선 "신 수석이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신 수석과 가까운 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민정수석을 맡으면서 검찰과 정권의 관계를 조율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컸다. 검찰 의중을 100% 반영하진 못해도, 적어도 조율은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 생각이 완전히 무시당했고, 앞으로 자신이 할 일도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신 수석의 실망과 불만은 문 대통령을 향한 것이라는 정황이 짙다. 한 여권 인사는 "신 수석이 민정수석직을 오래 고사하다 어렵게 받아들인 건, 문 대통령이 간곡히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결국 문 대통령이 박범계 장관 편에 선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신현수 오라"던 文, 왜 그랬을까

청와대는 이번 사건의 책임이 문 대통령에게 번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번 검찰 인사는 대통령 의중에 따른 것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통령은 결부시키지 말라"고 선을 그었다. '추미애ㆍ윤석열' 파동으로 국정운영 지지도가 추락하고 문 대통령이 사과까지 했어야 했던 악몽이 재현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이 인사안을 재가했다'는 사실은 불변이다. 검찰과 또다시 충돌하는 리스크를 모를 리 없었을 텐데, 왜 그랬을까. 추측은 분분하다.

①일단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가 대통령의 검찰을 향한 불신을 환기한 게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검찰이 정권을 겨냥한 수사를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자 인사로 대응했다는 시나리오다. 다만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②문 대통령이 기대한 신 수석의 역할 자체가 오독됐다는 해석도 있다. 대통령이 '비(非)검찰' 기조를 깨고 신 수석을 기용한 것은 '검찰과 소통하는 실무적 창구'를 원해서지, '검찰과 타협하는 주체'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신 수석은 검찰과의 관계 재설정 출발점을 검찰 인사로 봤는데, 문 대통령의 생각은 달랐던 것"이라고 말했다.


끝나지 않았다… 국정동력 또 훼손 우려

신 수석은 문 대통령의 수차례 만류에도 사의를 접지 않았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신 수석 속을 알 수는 없다"고 했다.

이르면 이번 주 단행될 검찰 중간간부 인사 결과가 신 수석 거취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기도 한다. 법무부의 또 다른 독주를 막고자 신 수석이 사의 표명이라는 벼랑끝 카드를 냈다는 줄거리다. 다만 "신 수석 성향상 '보여주기식'으로 말을 뱉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상당하다.

난감한 건 청와대다. 문 대통령은 '회복'과 '도약'을 목표로 내세우고,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며 지난해 윤석열 총장 징계 파동의 얼룩을 씻어내려 했다. 16일 고용과 부동산 분야의 '쌍끌이 특단 대책'을 주문했지만, 하루 만에 검찰발 진통에 휩싸이게 됐다.

더불어민주당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의 완전한 박탈)'을 내걸어 더 강력한 검찰개혁을 추동하고 있지만, 정무적으로 이로운 판단인지에 대한 견해는 엇갈린다. 민심의 피로도가 이미 상당하기 때문이다. 당청이 또다시 '검찰개혁 정국'을 조성하다 삐끗해 '레임덕'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신은별 기자
김현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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