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 드러나는 국정원 국회 사찰...흑역사 뿌리뽑아야

입력
2021.02.1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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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국회의원 사찰이 상상을 초월해 조직적으로 이뤄진 사실이 16일 확인돼 파장이 커지고 있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이날 국회 정보위 현안보고에서 일부 사찰 실태를 밝힌 뒤 국정원의 60년 불법사찰 흑역사를 처리할 수 있도록 특별법을 제정해 줄 것을 국회에 건의했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는 보궐선거에 미칠 영향을 따질 때가 아니라 국정원이 사찰 정보를 조사, 공개, 폐기할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에 합심해야 한다. 국정원도 적법하게 사찰 자료를 처리하고 다시는 불법 사찰과 정치개입에 간여하지 않는 조직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이날 국회 정보위 여야 간사들이 밝힌 MB 정부의 사찰 실상은 극히 일부임에도 경악할 만하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검찰 국세청 경찰의 자료를 국정원에 넘기고 국정원은 국내정보 부서에서 이를 데이터베이스화해 업데이트하고 비리정보도 수집해 민정수석실 요구에 따라 보고했다는 것이다. 박 원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정원의 국내 정보수집이 중단됐다고 밝혀 박근혜 정부까지 사찰이 이어졌을 가능성도 시사했다. 국정원의 직무 범위를 넘어선 불법 사찰이며, 김대중 정부 시절 정치인 불법 도청 사건 이후 국정원이 기관 차원에서 정치인을 사찰한 퇴행적인 사건이다.

국민의힘은 애초에 사찰 공방이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박형준 국민의힘 예비후보를 겨냥한 공작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는 점은 명확해졌다. 야당 의원들 역시 사찰 피해에서 자유롭지 않다.

청와대가 정보기관을 동원해 국민을 대표하는 헌법기관을 감시·압박하려 불법 사찰을 한 것은 심각한 범죄적 행태다. 여야는 국정원이 자료를 검토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제공해야 한다. 국정원은 사찰 자료를 점검해 진상을 규명하고, 그 과정에서 불법적인 도청 미행 등이 이뤄졌는지 여부도 밝혀야 한다. 법적 근거 없이 수집된 개인정보는 폐기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대책도 세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