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복' 더 이상 없다

입력
2021.02.15 18:00
26면
국민의힘 '비호감' 급감, 與 반사이익 없어
민주당, 지지층 의식해 뒤늦은 개혁 미련
명분 약한 보선보다 민생으로 대선 승부를



코로나19로 귀성과 가족 모임이 제한된 설 연휴였지만 저변에 깔린 민심의 흐름을 읽는 데는 별 부족함이 없었다. 두세 명만 모여도 방역과 생업이 대화의 중심이었고, 보궐선거와 대선이 화제에 올랐다. 곳곳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칼날 위에 서 있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여권의 수세는 최근의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되지만 유독 관심을 끄는 대목이 있다. 야당에 대한 비호감도 조사다. 지난주 한국일보 조사에서 나타난 국민의힘에 대한 비호감도는 19.1%로 호감도(17.1%)와 엇비슷했다. 지난해 6월 갤럽조사에서 비호감도(69%)가 호감도(18%)의 네 배였던 것에 비하면 반년여 만에 비호감도가 크게 줄었다.

이런 조사 결과가 던지는 의미는 분명하다. 여권에 더 이상 ‘야당 복’은 없다는 뜻이다. 제1야당이 기승전 반(反) 문재인에 그치지 않고 꼰대식 이미지를 벗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얘기다. 이제 민주당은 국민의힘과의 비교에 의한 상대적 가치가 아니라 성과 여부에 대한 절대적 가치에 의해 평가 받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문 대통령은 이를 인식한 듯 신년 회견을 기점으로 국정 기조를 민생 올인으로 전환했다. 윤석열 검찰총장, 최재형 감사원장과 ‘화해’를 선언하고 현 정권 관련 수사 진행을 사실상 용인했다. 이념보다는 민생에서 성과를 내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는 자세로 보인다. 문제는 청와대와 민주당 사이에 손뼉이 맞지 않는 모습이다. 당장 선거를 눈앞에 둔 민주당은 남은 개혁 과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으로서는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전략인지 모르나 타이밍이 적절치 않다. 뒤늦은 사법 농단 판사 탄핵 추진이 예상치 못한 ‘대법원장의 거짓말’ 파문을 빚었다. 징벌적 손해배상 등 언론 개혁은 국정 동력이 왕성한 정권 초기에 시행했어야 할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말 기자실 폐쇄 추진 과정에서 상당한 출혈을 유발한 사실을 잊지 않았나 싶다. 검찰의 수사·기소 분리도 원칙적으로 옳지만 국민에게 또다시 추미애-윤석열 갈등을 떠올리게 할 수 있다.

지지층만을 겨냥한 전략은 패착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많다. 집권 5년 차에 치러진 선거에서 여당이 이긴 사례는 전무하다. 대통령 레임덕에다 정권심판론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궐선거의 원인 제공자가 민주당이기에 명분에서도 밀릴 수밖에 없다. 이런 구도를 뒤집기 위해 무리해서 가덕도 신공항과 전 국민 재난지원금 같은 재정 공세를 쏟아내는 것은 국가의 미래를 멍들게 할 뿐이다.

이번 보궐선거는 대선의 전초전처럼 여겨지면서 과열된 양상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1년여에 불과한 임시 시장직 선거에 불과하다. 민주당이 굳이 당헌ㆍ당규를 바꿔가면서까지 후보를 냈어야 했는지도 의문이지만 선거에서 패하면 정권이 끝날 것처럼 공력을 들이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지지자들이 적지 않다.

여당이 길게 봐야 할 것은 대선이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긴다고 대선 승리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돌이켜보면 문 대통령 당선은 시민들의 촛불시위 덕분이었고, 지난해 총선 압승은 코로나 방역 성과와 야당의 반사 이익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민주당이 잘해서 연전연승한 게 아니라 운이 좋았던 셈이다.

지난 연말부터의 여권 지지율 급락의 가장 큰 이유는 능력 부족이다. 내로남불로 대변되는 도덕성 문제에다 민생 정책에서 실패한 탓이다. 지금부터 탄탄하게 성과를 내지 못하면 정권교체를 원하는 다수 국민의 마음을 돌려놓기 힘들다. 스스로 부족함을 깨달아야 기회가 열릴 수 있다. 이젠 야당 복도 사라졌으니 믿어야 할 건 오직 실력이다.

이충재 주필